[ 시 42:1-11 ㅣ 최병희 목사 ]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리고 찾아본 경험이 있으십니까?오늘 본문을 기록한 시편의 기자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아 헤매이듯,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광야의 메마른 땅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찾아 헤매는 모습에 빗대어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시면 “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낙심과 불안함과 초조함의 상황에서 갈증을 느끼며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 하나님을 찾고 계십니까? 이런 낙심과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본문의 시인은 처한 현실이 어떻길래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을까요?
1)3절에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조롱을 당하여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될 정도로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립니다. 10절에서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 그 말이 마치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그렇게 마음을 찌른다고 합니다.
2)그것만이 아닙니다. 4절에 보시면 과거에 무리들과 기쁘게 신앙생활 했던 것이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어서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3)또 5절과 11절에 보시면 굉장히 낙심하고 불안해하며 소망을 잃었습니다.
42:5 내 영혼아 네가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이어서 6절에서는 깊은 낙심과 좌절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5)또 7절에 보시면 요나처럼 깊은 바다에 던져져서 파도와 물결에 힘없이 휘둘리는 것 같은 속수무책인 현실입니다.
6)이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9절을 보시면 원수들의 압제를 받으며 서럽게 이곳저곳으로 다니는데도 하나님은 나를 잊으신 것처럼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인의 현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나를 잊어버린 것 같은 현실입니다. 목을 시원케 해 줄 물을 찾으나 눈물만 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인이 내리는 반응은 무엇입니까?“하나님을 바라보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입니다.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지금 시편 저자의 시선이 땅의 현실만 바라보는 것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목마른 사슴이 갈급하여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물! 물 밖에는 그의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다음 3가지를 통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1)주님께서 내게 말씀을 통해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6절)
2)기도로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으십시오(8절)여러분에게 정말로 애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으면 아직도 덜 급한 사람입니다.
3)목장에 나가서 여러분의 문제를 풀어놓으십시오. 갑자기 아주 큰 문제를 당하면 말씀도 눈에 안들어오고, 기도도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목장에 나가서 나의 사정을 이야기 하다보면 스스로 치유도 받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말씀과 기도와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니까 어떤 결과를 주셨을까요?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얼굴을 도우셨다는 말은 내 얼굴을 들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낙망하여 숙여진 고개를 하나님께서 들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입을 열어서 나를 낙망에서 해방시킨 하나님, 내 마음을 치유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11절을 같이 읽읍시다.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