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이번에 수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었습냐다. 몸의 불편함이 이미 임계점
을 넘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폐 끼칠 가능성이 너무 키서, 참석치 않는 게 오히려 낫
겠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버려진 돌이 머릿돌까지도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의지해서 용기를 내어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에 휴스턴 서울교회 최영기 목사님의 가정교회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에베소서
4장12절 말씀을, "성도를 온전케 하며 …"는 잘못된 번역이고, "온전케 하여 /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끔 하고, 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 이라고 성도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
이 생각났습니다.
새번역은 낯설었습니다.. 입에 붙지 않고, 평상어와 공대어를 이느 기준에서 사용하는지, 중국어,
영어 성경 번역에서 벗어난다고 지나친 의역은 없는지, 다시 개역개정으로 돌아가자고 번복하는
건 아닌지....그렇지만 내용을 이해하기가 쉬워졌고 앞으로 젊은 세대는 어차피 그 쪽으로 가게 되
어 있다는 생각에 새번역으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성경 요약를 하는데,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
았으나 정서를 하거나 컴퓨터로 다시 타이핑하다가는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아 그냥 제 최
근의 필체인 '개쇠체'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아 "언제 구원 받았는가?" "어디서?"에 대해 시원하
게 대답 못하고, '글쎄요, 국민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어머니 손 잡고 아버지와 같이 새벽기도
다닐 때, 주님과의 이 관계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그렇게 되도록 해 주세요. 이때
쯤부터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해 온 것 같습니다. 이번 생삶 성경 공부를 따라가면서 지난날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주일 예배를 빼먹고 친구 따라 놀러갔다 온 어느 가을 오후의 허망한 느낌.
사고를 당해, "정말 운이 없네. 재수가 없었네"할 때 "믿음 생활을 똑바로 해야지, 쯧쯧"
하면서 얼른 내 편에 서서 수습해 주시던 어머니, 몇일 지나면 내 마음 속에 "내가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 " 막대기로 서서 딴 길로 가는 나를 돌이키게 하시는구나. 감사 합니다.
그럴듯한 여자를 만나 “교회에 나가 줄 수도 있다." 는데, 금방 흐지부지 진행이 안 되는
건 왠지
개인 사업을 한다고 브라질에 다시 갔을 때, 첫 주일의 설교 말씀이 야고보서 4장 13절
~ 17절이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
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왜
창세기 12장 1,2절의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 같은 축복의 말씀을 설교 말씀으로 안 주셨나?: " 본
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 너에게 복을 주어 ~~ 너는 복의 근
원이 될지라." 몇 년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제 처 - 선교 훈련 받은 데서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식을 해 주었다고 하며 오자 마자 중국동포들 전도에 힘 쓰는 것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 제 계
획에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바져 있었습니다.
쓴뿌리 치유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하루 지나면서 보니 우리 조에서 나 빼고 모두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 온 것 아닌가? 제 얘기를 다 등들은 간사가 "이렇게 선순환인 분 드문니
다. 모두들 "그렇네요."하는데, "나는 왜 이자리에 와 있나?" 나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남들보다.
대충 30미터 앞에서 뛰기 시작한 건가? 소위 금수저와는 상관 없지만 쓴뿌리 기준으로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운동 잘하던 친구로 기억되던 제가 몸이 굳고 비틀거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렇지 않아도 목소리가 작아서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목도 굳어지는지 목소리가 더
작아지는 것 같아, 치료와 예방 차원에서 발성 연습을 해 보라는 제 처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에, 아, 오, 우를 시작했죠 발성 연습을 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펴지며,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 속에 와 닿기 시작하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16-18절) 말씀이 지금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물
론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고난이?" 했었지만, 곧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고난을
주서서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게 하시고, 그저 자그마한 세상 낙들을 즐기며 그럭저럭 살다.
가 사라져 가지 않고, 하나님 뜻을 헤아려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서서 제 남
은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구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50년 동안 피해 다니던 찬양대에까지 들어 가 버렸습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주님 만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맨의 계산 :
“예,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세 달란트를 불려서 여덟 달란트, 그 중에서 비용 한 달란트, 애들 키
우고 먹고 사는데 한 달란트, 도합 두 달란트 제하고 여섯 달란트를 드립니다. 네트로 20% 이익
이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번 생삶 성경 공부를 마치면서, 저는 기도합니다. 제가 받은 달란트를 전부 활용해서 열 달란
트를 만들어, 즉, 주님 맡기시는 일 다 마치고 가게 해 주십사, 저에게 새로운 꿈을 주십사, 몸은
후패해 가지만 정신은 더욱 또렸하고 영혼이 더욱 맑아지도록 해 주십사.
가까운 교회를 찾다가 예봄교회로 인도해 주셨는데, 와보니 치유의 기적이 많이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원컨대, 저의 질병도 깨끗하게 낫게 해 주읍소서. 혹,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구원의 은혜
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주님의 저를 향한 다른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깨닫고 그 뜻대로 살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동 성경공부를 따라가는데 격려해 주신 최병희목사님, 구인숙사모님, 김대영집사님, 김남영권사님,
최길순 권사님, 정의식장로님, 도윤아 성도님, 조광희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