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0-13ㅣ김남수 목사]
드디어 빌립보서의 결론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로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선물에 대하여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감사의 부분은 바울의 간증록 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사장이 아니라, 그는 본서의 저작의 또 하나의 동기인 자기의 투옥의 사실을 변명할 때도 생사에 대한 위대한 간증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절은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대단히 귀중한 말씀입니다. “할 수 있다.” - 그것은 지식의 문제도, 경험이나 기술의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그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가능하게 하실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20C 초엽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4살배기 소년이 가난한 농부의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조릅니다. 바이올린이 좋아요, 바이올린을 사 주세요 하고 조릅니다. 아버지는 이걸 사줄만한 능력이 없었지만 아이가 하도 사정을 하므로 애써서, 정말 어렵사리 바이올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습하더니, 놀랍게도 7살 때에 연주회를 가졌으며, 10살 때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그가 20C 바이올린의 대가인「예후디 메뉴인」이라는 사람입니다. 11살 때에 유럽에 건너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됩니다. 소위 ‘3B 협연’ 이라고, 「바하」,「베토벤」,「브람스」의 곡들을 계속해서 협연하는 큰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연주가 끝났을 때, 지켜 섰다가 그를 따라와서 와락 끌어 앉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바이올린니스트였습니다. 이렇게 11살 소년을 끌어 앉고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이제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 아인슈타인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 주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우리 죄를 사하신 분이요, 우리를 선택하신 분이요, 그리고 선택하신 자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그와 함께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능력을 주시는 분, 그 분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가 믿음도 주시고, 말씀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말씀은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말씀의 감격 속에서 살 때, 모든 어두운 그림자가 물러갑니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질병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의 희한한 능력을 체험하며 여기에 감동, 감격해서 하나님과 말씀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능력의 사람입니다. 또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진리의 영입니다. 내 마음이 아닙니다. 성령이 나를 감동할 때, 인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기적을 나타내게 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좀 더 깊이 살피면, 그냥 주어지는 능력이 아닙니다. 능력은 실제 생활 속에서 주어집니다. 모든 경륜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보십시오, 모세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우는데 80년이 걸렸습니다. 바로의 궁에서 40년, 광야에서 양을 치는데 40년, 그리고 이제 80세에 그를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결코 능력은 우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격이 주어지는 능력은 많은 시련과 사건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경륜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요함에 처할 줄도 알고 존귀함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함에 처할 줄도 앓았노라. 그래서 나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노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저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대학교 때 저의 의복이라고는 군인 작업복 한 벌을 사서 검은 물을 들인 것을 여름에는 팔을 걷어서 입고, 겨울에는 내려서 입었습니다. 1학년 때는 아르바이트가 잘 되어 재벌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3, 4학년 때는 왠지 아르바이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용산역 앞에 바울 학사가 있었는데, 교실 같은 곳으로 겨울에는 영하 20-30도인데도 난로 하나 없었습니다. 모포 한 장 가지고 지내는데, 밤 2, 3시가 되면 추워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습니다. 잠이 깨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상고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혼자 Q. T를 터득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가면 열심히 학원 복음화를 위해 전도를 하며 신앙 활동을 했습니다. 열심이다 보니 3학년 때는 총기독학생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바울학사에서 생활을 했는데, 방학이 되면 학생들이 다 집에 내려가니까 식사를 주지 않아 라면으로 20일을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교는 개학만 하면, 군사정권이 휴교령을 내려 운동장에 군인장갑차가 학교에 와서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없었는데, 교회는 학생들이 있는지라, 청년 신앙부흥회를 큰 교회 대학부들과 연합하여 열기로 기독학생회임원들과 의논하여 계획을 세우고, 부산 서울 등지에서 신앙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목사님들께서 격려해 주시고 후원해 주셨습니다. 부산에서도 집회를 하기 위해 장소를 섭외하려 부산에 7번이나 내려갔으나, 군정이 학생들에게 장소를 빌려주지 말라고. 공문을 내려 집회할 장소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7번째 내려갔을 때, 옥중 성도인 한 상동 목사님께서, 삼일교회 원로 목사님이신지라, 한국교회의 어른이심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서 뵙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최해일 목사님이 후임 목사님으로 와 계신데, 한 상동 목사님께서 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부산역 앞에 있는 고신 측 삼일교회에서 청년부흥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주 강사님은 “충현교회의 김 창인” 목사님이셨는데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집회 주제가 “서로 사랑하라” 이었는데, 그 집회 후 부산 목사님들이 은혜 받고 부산에서도 처음으로 부활절 예배를 전 교단이 연합으로 모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학생들의 집회 성격이 돌을 던지고, 데모를 하는 운동권 성격의 집회이었는데, 복음전파와 기도운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성경을 보니 초대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와의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령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고, 열심히 전도하며, 병도 고치고, 하나님의 기적이 동반된 복음전파였는데, 오늘날엔 그렇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목동에 우리 교회가 있을 때, 능력전도 치유 세미나를 우리 교회 중심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목사님들이 소문을 듣고 처음에 끝날 때 보니 6분이 참석했습니다. 다음 기 에는 50명 그 다음에는 250명, 그 다음에는 500명이 참석했습니다. 4기부터는 우리 교회가 좁아, 강남 장미아파트에 있는 교회를 고 정 원태 박사님이 섭외해서 그곳에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손봉호 박사님이 시무하는 영동교회로 가서 세미나를 하는데 1000 여명의 목회자들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시기 질투하는 목사님들이 우리 교단의 신학교, 총회, 영동교회의 당회에, 방해를 조작하는 편지들을 했습니다. 제가 훈련 받고 있는 목사님들에게 세미나 시간에 물었습니다. 이 세미나가 필요 없으면 그만 하자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계속하자고 들하며 청량리에 있는 합동 측 예일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자기 교회 즉 예일 교회에서 계속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도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예일 교회에 가서 세미나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15주 세미나가 끝나면, 「잠실 올림픽 체육관」을 빌려서 능력전도 치유폭발 성회를 가졌습니다. 그 다음 기에는 1500 여명의 목사님들이 오셨는데 상계동에 있는 충신 교회를 차 영배 박사님이 섭외하여 주셔서 충신교회에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 건물이 없기 때문에, 소망 기도원, 광림 기도원, 다른 큰 교회를 다니며 세미나를 하는데, 장소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치유 세미나를 방해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암 병이 걸리기도 하고 죽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역사는 무섭습니다. 그때 조광희 집사님과 김형대 집사님이 김포 장기 리에 다녀와서 우리 교회도 예배당을 짓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교회를 지을 때가 되었구나. 그런데 우리가 사고 싶은 김포 땅 주인의 할머니가 사위와 같이 사시는데, 사위가 계약 전날 쓰러지고, 미루어 다음 기회 계약 때는 주인인 할머니가 또 쓰러지고 그래서 이곳은 하나님께서 막으시는구나 하고 생각이 되었는데, 그 때 성도님들이 판교로 가자고 들 했습니다. 그래서 고 조 용현 건축위원회 장로님과 판교에 답사를 가면서 차에 앉아서 기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판교가 떠서 가봐야 땅은 없을 것이고, 혹시 원주민 교회 중에 땅이 비싸니까 팔고, 다른 데로 이사 가려고 하는 교회가 없을 가하는 생각이 들어 제일 먼저 부동산에 들렸는데, 그러한 교회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삼평동 엘림 교회” 얻습니다. 찾아가서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 하는데, 50 여명의 목사님이 자기 교회를 사러 다녀갔답니다. 왜 안 파셨느냐고 물으니까, 팔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사 갈 곳이 없어 그냥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서 돈을 먼저 드릴 테니까 ,천천히 예배당을 지어 이사 가시라고 제안하니까, 다음 주일 날 교인 총회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우리가 그 예배당을 사서 주일 오후마다 판교에 가서 오후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고대하던 우리교회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건축 당시 저의 건강은 과로 청문회 등으로 고혈압, 간염, 신장 등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기간이었습니다. 연대 병원에서는 주치의가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하신 은사 받은 분들도 그 몸으로 어떻게 건축하느냐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후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목사가 예배당 하나 못 짓고 하나님 앞에 가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교우 여러분과 집사람이 참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며, 토요일에는 내려와서 건축사항을 돌아보고 주일을 지키고 나면, 또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예배당 짖느라 기도와 봉사 헌금 등으로, 여러 성도님들과 장로님들 특히 조 용현 장로님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세미나를 하면서 청문회 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 때 내가 가르쳤던 내용을 책을 써서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가르쳤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미국 리젠트 대학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의 분교는 일본, 인도네시아,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세계 각지에 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A Model of Healing Ministry Training Based on Jesus' Ministry" 이라는 주제로 썼습니다. 리젠트 신학교 교수님들이 세계선교에 너무 중요하다고 인정하여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큰 기쁨은 최우수상보다도, 내가 가르친 것이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평신도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전인치유 사역” 이라는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출판하니까 치유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계속하니까 그 이후 한국교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치유사역도 보편화 되게 되었습니다. 김 영한 박사님이나 신학교 교수님들이 치유사역이 보편화되는데 저의 공헌이 크다고들 합니다. 치료되어 다시 세미나를 했는데, 또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쉬다가 조금 회복이 되어, 제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또 세미나를 했습니다. 또 쓰러졌습니다. 몇 년 동안 쉬고 있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있는데, 작년에 장로님들이 세미나를 다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저에 대한 생각이 지워져 50-60명 조금 왔지만 전과 동일한 성령의 역사와 치유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많은 치유의 기적을 배 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잊어버리거나 배반하면 또 어려워지거나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감사하면서 간증과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는데,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치유 받고 돌아와서 감사할 때 주님께서 치유를 확증시켜 주셨으나, 감사하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홉은 어디 갔느냐 무르시며 섭섭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교회에 치유를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저는 은퇴 후, 남은 시간을 연구하며 중급과정 책을 집필하고, 이 사역을 한국교회를 위해 조금이나마 섬기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마음을 넓혀 생각들을 해 보시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교회를 지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연구 장소와 건강, 돕고 협력하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비천에 처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대로입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있다고 교만할 것도 없고, 없다고 비굴해질 것도 없고, 칭찬 받는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굴욕을 당한다고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긍정적으로, 강인하게, 어느 사이에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키워 가시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낙천적 인생관, 거저 주시는 게 아닙니다. 능력의 사람은 사명을 압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결과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장면이 나옵니다. 타고난 앉은뱅이, 그 소문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날 때, 나는 그 장면을 읽을 때 마다 생각합니다. 누가 놀랐을까? 앉은뱅이가 놀랐겠지요. 뒤에서 보는 사람들도 놀랐겠지요. 베드로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대로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우대한 역사를 나타내시니 내 생명을 주님께 바칩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볼 때,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내 알바 아니요,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일을 즐길 수 있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최종 승리를 얻습니다. 특히 모든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생활양식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에리히 프롬」의 말입니다. 하나는 소유적 양식입니다. 뭐든지 얻는 것만 생각합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그리고 권력도 잡고 …. 그저 얻는 것, 챙기는 것만 지향해서 사는 이런 인간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보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또 하나는 존재의 양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기를, 속임을 당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씩 한 가지 씩 깨닫고,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떤 사람으로 키워져 가고 양육되고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능력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들으십시오. 집중해서 들으십시오. 집중적으로 들으십시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들으십시오. 추호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설교 들으면서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식탁을 마주하고 음식에 독이 안 들었나 의심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전적으로 믿고 들으십시오.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의심이 생긴다면 그것은 사탄이 쏘는 화살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탄은 의심으로 우리를 넘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는 만큼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대로 전폭적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할 때에 능력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가라하셔서 갔으면, 나보고 가라하신 이가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형의 사람은 항상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그런고로 영원히 자유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한고 사는 사람은 그 영혼이 항상 자유롭습니다. 그야말로 신령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동안에 어떤 식으로 살아왔습니까? 이제는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능력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