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4-7, 살전 5:16-18ㅣ김남수 목사]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말씀하는바 기쁨과 기도와 감사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하나님의 소원이요, 이를 그리스도인의 3덕이라고 합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이 말은 곧 어떤 환경에서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늘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일에 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에 기쁨이 있습니까? 어느 때에 기도합니까? 어느 때에 감사합니까?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줄 알지마는, 그렇게 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도바울의 기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가 처한 환경에 연유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로 그는 충분히 기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으로 아주 만족해합니다. 그에게는 절대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구절구절에 수없이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다. 너는 나의 자녀다. 그런고로 아버지가 된 나의 소원은 자녀 된 너희가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떤 여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교회에 안 나오는 분입니다. 결혼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끈질 게 기도했는데도, 남편이 고집이 세어서 교회에 안 나옵니다. 그래 아이들하고만 교회에 나오는 집사님인데, 늘 그저 ‘남편은 왜 교회에 안 나올까요? 하나님! 내 남편 예수 믿게 해 주세요.’ 했습니다. 그게 늘 불만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바뀌는데 그저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 남편이 저렇게 술 먹고 다니면서도 건강한 게 신통하고, 자기 집 찾아오는 게 신통하고, 또 나 예수 믿는 것 방해하지 않고 아이들 데리고 교회 나가라고 하고, 헌금도 챙겨주고 하니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좋은 남편에 좋은 아들에 ……. 행복하지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 나 참 행복해요. 좋은 남편에 아이들도 착하고 …….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러자 남편이 “미쳤냐?” 하더랍니다. 그런 걸 그 다음 날 또, “여보, 나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해요. 나는 정말 행복해요.” 그랬더니, “정신 나갔냐?” 하고, 사흘 째 되는 날, 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난 행복하다 한 마디 했더니, 남편 하는 말이 “그만 해 둬, 사실은 나도 그래.” 하는 것이고, 더욱이 그 다음 말이 재미있습니다. “예수 믿어 줄게” 그러더랍니다. 20년 동안을 예수 믿으라고 해도 안 믿더니, 사랑한다 해도 안 되고, 당신을 위해서라 해도 안 되더니, 나는 행복하다 하니까 예수 믿더라, 이것입니다. 여기에 파동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믿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그 기쁨과 행복, 이것은 파동을 일으키고 파급효과를 냅니다. 그래서 공명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 기쁨 속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둘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인격적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 간섭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활 현장에서 함께 하시겠다고, 네 모든 소원 속에 내가 있겠다고 하시는데, 이를 거절하는 것은 가장 큰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의논하기 원하시고,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대회의 상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공급하시고자 하십니다. 뭘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 준비해 놓으시고 계속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주고받는 관계에 있고 싶어 하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 많이 주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구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같이 기도할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듣는 마음을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어디 있던지 너와 내가 만나자, 이야기 하면서 살자 - 아시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엄마, 엄마, 아빠, 아빠, 귀찮게 부릅니다마는 조금 크면 ‘아빠’ 가 변해서 ‘아버님’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한 달에 한 번도 연락이 없습니다. 삼년에 한 번 전화 한 통화도 없습니다. 이때 부모님이 너무 섭섭해서, 그래서 전화를 걸고 싶은데 자식이 귀찮아할까 봐,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하기를 꺼려한다면 이 관계가 제대로 된 것입니까? 그저 밤이고 낮이고, 아무 때나 보고 싶을 때 통화가 되어야지요. 또 통화할 때마다 반갑게 - 그리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헬라어의 원문대로 뜻을 살펴보면 “쉬지 말고” 는 “끊임없이’ 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곧 “그치지 않고 중단 없이” 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라. 그 말씀입니다. 삼상 12장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습니다.”고 합니다. 가도하기를 쉬는 죄 -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그것이 죄입니다. 큰 죄입니다. 보십시오. 왜 기도 안 합니까? 교만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일이 잘 되어서 기도 아니 합니다. 어리석어서, 때로는 내가 지금 당한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도 해결하실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불신앙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중단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이런 때도 저런 때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기도를 일상화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문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기도에 심취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꼭 그렇게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만 기도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십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야기는 언제 생각해 보아도 감격적입니다. 자,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이대로 노예로 살다가 죽어져 사라질 민족입니다마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으로 그것을 가능케 하십니다. 홍해를 건너 나왔을 때 그들은 얼마나 감격했습니까? 노래를 불렀습니다. 찬양대에서 가끔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하고 서로 교창을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그 때부터 시작한 것이라 합니다. 홍해 가에서 2대로 나누어 서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랬을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받은 은혜에, 출애굽의 은혜에 감격해서 찬송 부르며, 즐거움으로 이 광야 통과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한두 주일 걸리는 길입니다. 그걸 원하였고, 또 저 앞에 약속의 땅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약속의 땅을 눈에 환히 그리면서, 환상 속에서 비전을 가지고 찬송하며, 이 어려운 광야를 통과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 항상 기뻐하는 것 아닙니까? 비록 광야이지마는 이 광야를 통과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통과하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잘 극복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닙니까?
‘Life is process.’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은 과정입니다. 멎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마음으로 지나가느냐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세상의 생의 과정을 지나가기 원하십니다. 과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앞에 주신 약속에 대해 감사하고, 그리고 현재의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나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감사하라” 이는 명령입니다. 사람의 사람 된 인격은 3가지 품성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가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높은 인격의 사람이라 합니다. 이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고맙다고 하는 말을 얼마나 하고 삽니까? 보아하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누구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면, 그 순간에 상대는 높아지고 나는 낮아지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합니다. 감사의 높이, 내 인격의 높이입니다. 감사의 넒이, 내 행복의 영역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여러분은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얼마나 자유롭게 합니까?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참으로 귀중힌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사랑합니다.” 할 수 있고, “고맙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은혜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도 압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행복지수’ 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전문적으로 체감행복지수를 연구한 보고서가 나와 있습니다. 54개국을 대상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는데, 이상한 것이 행복지수는 GNP 하고는 무관하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정반대였습니다. 보십시오. - 54개국 중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세계 1위입니다. 필리핀이 5위, 미국이 46위, 일본이 44위, 한국이 23 위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흔히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불행한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산다고 하는 방글라데시인데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무엇입니까? 잘 살고 못 살고와 행복은 관계가 없다. 그 말입니다. 이걸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잘 살아야 된다. 무엇을 한다, 이것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든지 조건 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의 신학적인 의미는, 곧 감사는 조건과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환경과 관계없다. 환경과 관계없는 것이 감사하다는 말씀입니다. -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몸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날에 언제가 행복했나? 행복지수가 어디 있었던가? 감사와 행복은 물질적 여건과 관계없다 - 이것을 일생동안 배우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말을 들어 봅시다. 참회록에서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어느 것도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을 생각하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것도 은혜요 저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나를 생각하면 죄 뿐이요 하나님을 생가하면 은혜뿐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행복으로 충만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여 더불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그리스도인, 쉬지 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범사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소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도록 오늘도 강한 주권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되게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바라시는 마음을 알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