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14-30, 누가복음 19:11-24 | 김남수 목사]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섬김으로 인해 받게 될 보상의 원리와 심판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원리를 마 25:11~30의 달란트 비유와, 눅 19:16~24절의 므나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I.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대한 평가
1. 달란트 비유에 나타난 섬김에 대한 평가(마 25:26~30)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의 중심주제는 똑같습니다. 이 두 비유는 어떤 부유하고 권세가 있는 사람이 자기 재산의 일정액을 관리하도록 맡기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간 이야기입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부자는 돌아와서 각각의 종들에게 맡긴 돈을 그들이 이윤을 남긴 방식에 대해 개별적으로 회계합니다. 이 각각에서 세 명의 종이 나옵니다. 처음 두 사람은 그들에게 맡긴 돈을 관리하는데 신실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란트 비유 마 25:11절은 돈을 분배했던 방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인은“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5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2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에 해당한 상당한 액수의 돈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돈을 분배했던 원리는 각각의 재능에 따라 분배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가 그의 능력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달란트를 각자에게 분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각자가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처음의 두 종 각자는 100%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벌어들인 돈의 양이 아니라, 벌어들인 양의 백분율에 의해서 종의 신실함을 평가했습니다. 5달란트를 남긴 종이 두 달란트를 남긴 종보다 돈의 양은 더 크더라도, 더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 종 각자가 다 똑같이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일한 비율의 평가, 즉 100% 증가를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마 25:21,23 두 종에 대한 칭찬의 말이 정확히 똑같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인이 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들 각자는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각자가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들 각자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이익, 즉 100%를 남겼습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의 근거는 그들이 달성한 이익을 백분율로 나타내는 신실함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에서 3번째 종은 받았던 한 달란트를 거저 감추어 두었다가 나중에는 받은 그대로 주인에게로 도로 가져왔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어떠한 보상에서도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 주인이 있는 곳에서 거부되어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마 25:26~30에“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 번째 종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원래 받았던 한 달란트마저도 박탈당하고, 그 자신도 주인이 있는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2. 므나 비유에 나타난 섬김의 평가 (눅 19:16~24)
눅19장에 있는 므나 비유를 이제 또 봅시다. 한 므나는 노동자의 3달치의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이 비유에는 10명의 종이 언급되지만, 단지 세 명의 종의 경우에만 자세히 묘사됩니다. 원래 10명의 종 각자가 주인에게서 같은 분량의 돈을 맡김 받았습니다. 세 명의 종들 가운데 첫 번째 종은 열 므나를 남겼고, 두 번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고, 세 번째 종은 받았던 므나를 감추어 두었다가 다시 주인에게로 가져왔습니다.
세 명의 종 각각은 동일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똑같은 므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똑같이 신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째는 둘째보다 두 배나 더 벌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에 대한 보상은 두 배나 컸습니다. 눅 19:16~19절에“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첫 번째 종의 보상이 두 번째 종의 보상보다 더 컸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입니다.
첫째, 첫 번째 종은 특별히 그의 주인에게서 착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반면, 두 번째 종은 그러한 특별한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첫 번째 좋은 열 고을에 대한 권세를 받았던 반면, 두 번째 다섯 고을에 대한 권세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보상은 각자가 달성한 이익의 정확한 비율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유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결론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통치할 때, 주어지는 권세와 책임의 위치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 시대에서 신실하게 섬기는 것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더욱 확장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을 계속 섬기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나 특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실한 자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시작된 특권이 영원토록 확장될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므나 비유에서도 세 번째 좋은 신실하지 못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므나를 전부 사용하지 않는 것 때문에 정죄를 받았습니다. 눅 19:22~24절에“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므나 비유에서도 신실하지 못한 좋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받았던 므나 마저도 빼앗겼습니다. 한 므나 가진 종의 최후는 이 비유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신실하지 못한 종처럼 거부되어 주인이 있는 곳에서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이 두 비유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각자에게 맡겨진 달란트나 므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것은‘악한’이라는 매우 강한 말로 묘사된다는 사실입니다. 각각의 경우에 주인은‘악한 종아’라는 신실하지 못한 종에 대한 심판을 시작합니다. 이것으로부터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르는‘악한’은 적극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는데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입니다. 약 4:17에“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소극적인 죄가 적극적인 죄보다 덜한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와 똑 같은 사상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 3:18의 예언적 계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여기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정의되며, 악인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로 규정됩니다. 이 교훈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 자체가 이미 악함이라는 말입니다. 두 비유에서 신실하지 못한 종이 정죄와 거부함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이 악함이었습니다. 이 두 비유에서 거부당한 종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어떤 악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비유에서 세 번째 종이 거부당한 근거는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데 있었습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똑같은 심판의 원리가 그분을 따르는 자들과 또 그분의 종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적용될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두 비유에 나오는 신실하지 못한 종은 보상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마저도 거부되고 쫓겨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달란트 가진 신실하지 못한 종은 -좋든지 나쁘던지 간에- 자기 주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행동하지 않은 것은 그 신앙고백과 섬김이 헛되고 진실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약 2:6에“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는 공허하고, 쓸모없고, 진실하지 못함입니다. 그런 믿음은 보상받을 수 있는 섬김을 결코 산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자신의 영혼의 구원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섬기지 않은 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는 위선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러한 사람에 대한 심판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5:30)” 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심판에 대한 구절들이 마 24:51, 눅 12:46을 보면, 울면서 이를 갈고 있는 바깥 흑암의 장소가 위선자들과 불신자들을 위해 보존된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자기 주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실하지 않은 종은 이와 똑같은 범주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실제로는 위선자요, 불신자입니다. 그에게 정해진 장소는 바깥 어두운 곳입니다.
II. 천사는 모든 위선자를 제거하리라.
위선적인 종들에게 대한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이끌 중요한 결론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자리에 서기 전에, 모든 위선자와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믿음의 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먼저 분리되고, 그들의 위선과 거짓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위선자들의 심판은 마13장 천국 비유장의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묘사됩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선포한“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은 사단의 왕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오라고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에게까지 손을 내민 초청이지, 반역하는 천사들까지 즉 귀신들에게까지 내미는 초청은 아닙니다. 이 초청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이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반역에 대해 회개해야 하며, 다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에게 자신을 내어드려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곡식과 가리지, 그물 비유는 하나님의 왕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 가운데 몇몇은 사실상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회개와 복종을 했지만, 심령으로 진실하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내적이고 심층적인 성품의 개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곡식과 가라지 비유의 주된 목적은 현 시대까지 끝날 때, 위선자들에 임할 하나님의 특별한 심판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 나온 종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 버려야 할지를 묻습니다. 마 13:29에“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이것은, 종들이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가라지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고백을 결코 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전체에 대한 온전한 해석을 말씀해 주십니다. 마 13:37-43“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가라지가“악한 자의 아들들”임을 밝히십니다. 밭에 그들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마귀가 그들을 곡식 가운데 의도적으로 뿌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위선자를 심는 것이 사단의 전략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추구하는 한 가지 방식은 교회의 증언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시대 끝에 이루어지는 심판에서 천사들이 먼저 참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모든 거짓된 그리스도인들을 한데 모아서 울면서 이를 가는 불의 장소로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일어난 후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분리되어서 불 심판의 장소로 던져 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후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보상을 받고 부활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물의 비유에도 이와 동일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마 13:47-50에“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이 그물 비유에서 그 그물 안에 있는 각종 피조물은 복음의 초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했던 모든 이들을 나타냅니다. 이 시대가 끝날 때, 천사들이 의인으로부터 악인을 분리해서 불이 타는 처벌의 장소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오직 그런 후에만 선인과 의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복과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계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해질 심판은 정죄의 심판이 아니라는 이유를 보게 됩니다. 참된 믿는 자들에게 대한 이 심판이 있기 전에, 천사들은 모든 위선자들과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이미 분리해서 처벌의장소로 던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을 받으려고 서 있는 자들은 오직 참되고 의로운 믿는 자들뿐일 것이며, 그들의 영혼의 구원은 그리스도 자신의 의에 근거한 그들의 진실한 믿음을 통해서 영원히 보장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오직 참되고 진실한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자들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칭찬과 상을 받게 된 복된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천사들이 모든 위선자들과 거짓 그리스도인을 분리하여 활활 불타는 처벌의 장소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예봄 교회교우들은 모두가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알곡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칭찬과 상을 받도록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고 힘차게 달려 나가며, 우리 주님께 충성을 다하여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