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3 | 김남수 목사]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유월절 예비일(금)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겨 그 약속을 붙잡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자 오순절 날이 이르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로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셨습니다.(행2:1-4)
오순절에 관해 잠깐 설명 드리면, 본문 행2:1의 “오순절”이란, 유월절 중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에서 가산하여 50일째 되는 날을 오절이라 합니다.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린 날로써 맥추절, 초실절 이라고도 했고,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또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인 10계명을 주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새 법인 사랑의 법을 돌 판이 아닌 사람의 마음의 심비에 새긴 것입니다. 특히 잘 들어 보십시오. 오순절은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에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속죄소, 시은좌에서 “내가 이 백성의 죄를 사했노라”선포하시면 그 음성을 듣고, 대제사장이 지성소 밖에 나와 끓어 엎드려 회개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죄를 사하셨습니다.”선포하면, 백성들은 일제히 기뻐하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축제를 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 번에 완성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땅에서는 보지 못함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화목하게 하신 메시야이신 것을 온 우주적으로 선포하고 확증한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설교말미 행 2:36절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고 증거 했습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우주적으로 확실하게 알도록 선포하고 증거하신 날인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오순절에 처음 익은 곡식을 드린 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영혼을 추수하실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실제로 오순절에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므로 첫 추수인 3000 명이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누구나 성령 받으면 능력 있는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증거한 사건이 곧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인간이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는 길이 환하게 열린 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이러므로 구약 백성들은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추수한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고, 먹고 마시고 찬송하며, 율법을 읽고 가르치고 암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오순절은 즐거운 절기요, 축제입니다. 바로 이때, 감사하는 그 기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세 가지 행 2; 1-4절을 보면 세가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둘째, 불의 혀 같이 갈라진 것.
셋째, 방언과 함께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곧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은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에서 일어난 분명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을 기록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다. 구약을 알고 있는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문화권 사람들이 오순절 사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저들이 알도록, 저들이 이미 알고, 경험한 그 절기 안에서 이 사건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2-4절은 성령께서 임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절에“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1) 첫째 표적은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입니다.
성령이 바람은 아니지만, 바람이라는 상징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성령이든, 사람의 영이든,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 “영”을“루아크”라고 합니다. “루아크”는 본래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헬라어로는 “퓨뉴마”라고 합니다. “퓨뉴마” 역시 바람을 뜻합니다. 요3:8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퓨뉴마 프네이”입니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은 “영”을“바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영”이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약간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귀신이나 혼령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사람들은 그 “영”을 가리켜서 “성신(聖神)”- 한자로“거룩한 귀신”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만을 바탕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영이란 말이 그리 좋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성령”- 원문대로 하면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했습니까? 바람의 특성과 성령의 특성이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이 힘인 성령도 우리 마음을 가동시키고,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시는 등, 큰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바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강한 바람도 눈에 안보이지만 나무를 흔들고, 바다를 흉흉하게 하고, 윙윙 소리를 냅니다. 눈에는 안보이지만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바람, 참으로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미국은 큰 대륙이라서 그런지 바람도 아주 세찬 편입니다. 그 가운데 토네이도라고 하는 회오리바람이 있습니다. 이 회오리바람은 기둥처럼 먼지를 내면서 쭉 뚫고 지나가는데,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것을 보았는데 자동차가 바람 속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그냥 떠올라 갑니다. 토네이도가 한 번 지나가면, 지나간 자리마다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건물이고 집이고 남아 있는 것이 없이 파괴되어 폐허가 됩니다. 허리케인 같은 태풍도 지나간 자리를 우리는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바람이 이렇게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큰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의 큰 권능을 받으면 대륙을 흔들 수 있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령을 바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리케인과 같은 위대한 힘인 성령의 권능을 받으십시오.
또한 바람이란 강한 공기의 이동으로 무거운 것을 몰아내고 새로움을 가져오는 것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세상에서 불어온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강한 바람이었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 있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세속을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의 기운으로 채우는 힘을 줍니다. 개인 속에, 가정에, 사회에 임하여서 위대한 새로운 운동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운동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강하게 임하게 합니다. 때문에 성령이 없이는 죄 용서함이나 사랑을 체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치료운동, 축복운동, 영생운동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강하게 임한 성령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가지고 우리의 모든 삶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또 성령은 저희 앉은 온 집에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충만케 하며 전인적, 존재를 완전히 채우십니다. 우리의 일부분에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채우고 몸과 마음을 채우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채우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거대한 변혁을 가져옵니다. 큰 변화의 바람을 불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하여 성경은 요14:17에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세속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을 알기 때문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합니다. 성령 바람은 거대한 변혁의 바람입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자 겁쟁이인 어부 등 가장 낮은 계층의 120문도가 삽시간에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바람이 가득 채워지자 예루살렘을 온통 변화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인간의 말로만 복음이 전파된다면 변화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복음은 반드시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을 통해서 온 인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과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절은 성령의 강림의 모습을“불의 혀처럼”이라 했습니다. 3 절에“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두째 표적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의 머리위에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불도 아니고 혀도 아닌, “불의 혀 같은 것이”나타나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헬라 원문대로 보면 계속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의 각 사람 120 명의 머리 위에 “불의 혀 같은” 것이 머무는 것을 저들은 보게 된 것입니다.
왜?, 각 사람 위에 머물렀을까요? 이 역시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선택하신 자에게 임하시는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성령를 불로 비유한 것은 불의 특싱과 성령의 역사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을 불로 비유한 것은 먼저 불은 태워 없애는 성질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와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가 타 없어지기 때문에 불에 비유한 것입니다. 불순종 죄악이 있다면 성령의 불을 받으세요. 불로 죄악을 태우세요.
또한 불로 비유한 것은 불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아지게 하듯, 성령이 심령에 임하시면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은 따뜻하게 합니다. 성령은 몰인정하고 차갑고 냉랭한 이기적인 마음을, 훈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마음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불은 동력의 근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에 능력이 생깁니다. 기도와 전도의 힘이 생겨나고, 신앙의 힘이 생겨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깁니다. 능력이 마음속에 생기게 됩니다.
다음은 불의 혀 같이 “혀”의 능력입니다. 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혀는 사람의 지체 중 가장 작은 것이지만 온 몸을 제어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큰 배가 작은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혀는 선악 간에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의 혀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혀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혀의 말은 진리를 말하게 하고, 사랑을 말하게 하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긍정적인 힘 있는 말을 하게 합니다.
또한 혀의 말은 예수님의 의와 화해와 축복과 영생구원을 전달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언어가 우리 속에 충만해지고 가정과 생활과 사회에 성령의 언어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큰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같이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고 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감사할 때 성령은 우리를 초인적으로 능력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전도와 가르침은 모두 혀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러므로 성령강림의 모습이 “불의 혀 같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이제 행2: 4-11절을 자세히 봅시다.
3) 세 번째 표적으로 “방언”이 나옵니다.
4절: 그들(120문도.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 즉 방언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방언일까?
5절: 모인 사람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인데, 9-11절을 보면 14개 나라 이상(리비아 각 지방, 유대교에 들어 온 이방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6절: 모인 큰 무리가 각기 자기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방언은 거기 모인 각 나라 사람들의 언어 즉 지상나라 말입니다.
7절 8절에 놀라는 이유는 갈릴리 사람으로 이들이 배우지도 않은 언어를 즉 무리들이 태어난 각국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놀랐습니다.
8절은 14개국 이상 나라 사람이 그들이 난 곳 방언(언어)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헬라 사람은 헬라어로, 로마 사람은 로마어로, 애굽 사람은 애굽 어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9-11상은 14개국 이상의 국가명이 기록 되었습니다. 완전히 언어가 통한 것입니다.
11절 하반절은 우리가 (14개국 이상 나라 사람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들었으므로 그러니 깜짝 놀란 것입니다.
이 행 2장 방언에 관하여 학자들에 따라 어떤 학자들은 귀가 열려 자기 나라 말로 들었다. 또는 어떤 학자들은 입이 열여 각국 방언을 말했다고도 말을 하는데 구속사 적으로 말씀드리면, 구약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언어의 혼잡 하여 때문입니다. 언어가 혼잡케 되자, 같은 언어를 사용한 사람끼리 모여 무리를 이루어 시날 평지를 떠남으로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저들이 각기 다른 언어 즉 배우지 않는 다른 나라 언어, 지상나라의 언어, 방언을 말했습니다.
이제 그 의미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로 통일이 되어 서로 의사소통이 된 것입니다. 각기 다른 지상나라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거기 모인 각국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됨으로,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로 통일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엡 2:16-19절에 의하면. 16-19절은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씀대로 천하 만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되고 통일이 된 일이 실제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즉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즉 인종, 국가, 문화의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만일 하나가 되지 못하고, 편당을 짓거나, 또는 분리시키는 것을 조장한다면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이를 가리켜 약3:13-16절에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말씀했습니다. 이 점을 잘 알고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죄의 뿌리가 있다면 성령의 불을 받아 태워버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홀이라도 그러한 싹이 돋고 있다면 뽑아 버리고 돌이키십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엡4:13절에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봄교회 교우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십시다.
고전 12장 14장에도 방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방언은 오늘 사도행전 2장이 말씀하는 방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요, 영의 기도의 언어로 통변이 없으며 그 의미를 못 알아듣는 방언”입니다.(고전14:2, 13-15)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모였다할지라도 방언들을 함으로 모두가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의 특징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로 하는 고전12,14장의 방언과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는 다릅니다. 사도행전 2쟝의 방언은 아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지상나라 말, 즉 방언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11절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적인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큰일,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언어가 통역 없이, 언어의 장벽 없이, 그대로 통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오순절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교회라는 말을 합니다.
오순절 교회가 무엇입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하나가 되는 교회, 서로 사랑으로 통하는 교회, 말씀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어떤 말씀을 듣든지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와서 100% 수용이 되고 믿어질 때에, 이것이 바로 오순절 교회, 초대 교회입니다. 성령 받은 교회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을 한 시간 내내 들었는데도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알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못 박았거나,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대로 통하게 하는 것이 오순절 교회, 초대 교회 ,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결국 성령강림 사건 앞에서 우리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적이다, 새 술에 취했다. 알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므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해되고, 믿어지고, 받아들여지고,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변화 됩니다. 하나가 됩니다. 서로 사랑하고 벽이 없이 통합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입니다. 오늘날도 이 성령께서는 사랑과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