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3:14-21 ㅣ 김남수 목사]
바울사도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에 붙들려서 생각과 뜻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바 되어 이 편지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감을 받아쓰므로 해서, 이제 우리는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으로 고백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늘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성령의 영광으로 이 편지에 옮겨 쓰는 그런 시간입니다.
이렇게 영감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보는 대로는 기도 중에 계속 기도하면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영감이 편지 속에 이렇듯 반영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서만 해도 기도문이 3번 나오고, 바울 서신 중에 종종 기도문이 나오는데,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노라 합니다.
기도의 서두, 본론, 결론으로 나눌 수 있는데,
I. 기도문의 서두 (엡 3:14-16상)
14, 15절에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바울사도의 기도의 서두입니다.
서두를 “이러므로”란 말로 시작합니다.
지금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기도의 대상입니다.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기도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이름을 주신 하나님 앞에”라고 말씀합니다.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창조주 되신 분, 섭리자가 되신 분, 성격과 운명을 좌우하는 분임을 지칭합니다.
이름을 주신 그 분을 또한,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주기도문을 보세요. 하나님이란 말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끝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관인데, 바울도 본문을 보니 ‘이름을 주신 아버지‘ 이것이 다입니다.
하나님이란 말씀이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가깝고 하나님을 친밀한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만큼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이웃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형제로, 이렇게 아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자녀로써 아버지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자녀 된 정체의식이 분명해야,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기도의 자세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한국교회가 처음 의자를 놓으려고 할 때 참 어려웠습니다.
성경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했는데, “의자에 버티고 앉아 기도한다고 안 된다”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해야지.
그런데 여기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진짜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기도 하지마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의미하는 줄로 압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릎을 꿇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자세입니다.이것은 먼저는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이요, 그리고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무릎을 꿇고,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자신을 굴복시키고 주의 뜻대로 하겠다는 온전한 헌신과 순종이 나타나있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었다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 이 말씀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II. 기도의 내용인 본론 (엡 3:16-19)
바울사도의 기도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큰 것이 4가지입니다.
첫째는 성령의 내주를 통하여 속사람이 강건, 건강케 되기를 기도하고,
둘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속에 계시기를 기도드렸으며,셋째는 그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정착되기를,넷째는 그들이 지극히 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그들이 충만히 채워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첫째 : 속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 건강하게 하시오며
16절에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 하게 하옵시며”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따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풍성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인데, 예수그리스도의 측량을 통해서 주신 무한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의심 없이 확신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성령을 받아야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리가 중생하면 성령이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집니다.
오늘날 중생해서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신앙의 열심이 없고, 기도와 찬송과 전도에 맥이 풀려있는 성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강건, 건강이 중요합니다.
건강해야 이 시간에 예배에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정신적 건강이 중요합니다.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밤낮 쿨룩 쿨룩 하는 것은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면 여유가 있습니다.
비난을 들어도 대신 욕할 마음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내 행복과 충만함이 있으니까, 그 까짓것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이것이 건강입니다.
“하나님이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주십시오.”
속사람만 강건해지면, 집안이 엉망이지만 그것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지만, 이것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집중됩니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옵소서 - 속사람은 혼이요, 신령한 세계요, 정신적인 세계입니다.
이것을 강건하게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역사로 강건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합니다.
속사람이란 먼저 이성입니다.
이성이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이성이 병들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성이 강건하게 되어야 합니다.
또, 양심이 강건해야 합니다.
양심이 병들어 가지고는 문제입니다.
양심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의지가 강건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결심만 하지 실천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것이지, 하다 말다 할 것입니까?
의지가 병들었습니다.
특별히 현대인들은 의지가 박약합니다.
대체로 아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은 적어도 의지가 강했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아는 것은 많은데, 의지가 아주 형편없습니다.이것이 현대인들의 크나 큰 약점입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지·정·의가 강건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이기 때문입니다.이것만 강건해지면, 나머지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 바울사도의 기도내용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계시기를 간구했습니다.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계시게 하옵시고”바울의 두 번째 기도내용은 너희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마음속에 계시기를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성도들의 마음속에 와서 거하시는데 믿음을 통해 거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눈에 안보이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령께서 오셔서 은혜를 주셔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안 오면, 절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인데, 지금 저 보좌 위에 계시고, 동시에 우리 마음에도 계십니다.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곧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고” 요새 우리가 쓰는 말로는 “성령 충만 하옵시고”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해주세요, 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존재, 영적 존재가 내안에 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셔서 나를 감동시키시고, 내 의지를 주관하시고, 나를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계시게 하옵소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안 계시면 누가 계십니까?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 이렇듯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좌정해 계시고, 왕권을 가지고 내안에 계시고, 너희 모든 생활을 그리스도께서 다스려주시기를 바란다 그 말씀입니다.
세 번째 기도의 내용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입니다.
17절 하반 절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바울의 세 번째 기도내용은 그들의 생활이 사랑의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사랑받는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생활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울은 농사와 건축에 비유하여 뿌리가 땅 속 깊이 박고, 건축물 기초가 굳건한 것과 같이 견고해져야 한다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모든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음으로 깨닫고, 성령께서 마음을 뜨겁게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깨달은 사랑을 마땅히 지체인 성도들끼리 서로 나누어주어야 할 것을 기도한 것입니다.
18절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그리스도의 사랑은 머리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함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령의 역사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분명히 지식을 능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피터 헨슨」이라고 하는 예방의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건강의 비결을 3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한 음식입니다.
둘째는 적당한 운동입니다.
셋째는 자기에게 해로운 모든 습관을 버려야한다고 했습니다.
무절제한 생활, 게으른 것도 나쁩니다.
이러한 건강에 해로운 모든 습관, 이로부터 벗어나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건강비결의 50%뿐이고, 나머지 50%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건강관리의 비결은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하게 되면,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면 당장 감기 들고, 설사를 하고, 병듭니다.
어른도 그렇습니다.
고독은 질병으로 통하는 것입니다.그
래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핸슨 박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웃사랑은 도덕상의 문제이기 전에 건강상 문제다”건강하려거든 사랑을 하십시오.
미워하고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보약을 먹어도 안 됩니다.사랑이 건강의 비결이다 합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요, 근본적인 사랑이니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면, 영적으로 건강합니다.의지적으로도 건강합니다.
그 사람을 알게 되면 육체도 건강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모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9절에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바울은 사랑을 3차원으로 말씀합니다.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아 - 역시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엄청난 세계를 우리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먼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의 경우는 아주 넓습니다.
때때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넓은데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나만 사랑하시지. 왜 저도 사랑해서, 나 같은 사람만 사랑하시지 저 같은 못된 사람을 사랑하시나.” 이런 불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 보면 이런 경우가 있잖습니까?
자식이 많으면 그 자식들 가운데도 질투가 있습니다.
나만 사랑한다면 좋겠는데 가만히 보니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 사랑해”, “나만 사랑해”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습니다.바다보다도 넓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 말씀입니다.
그것을 내가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마음만큼 넓어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불만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아이쿠! 저런 분들도 사랑하시는구나.”그렇잖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공산주의자들도 사랑하십니다.
공산주의에 오랫동안 고생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 백성들이 요나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니까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이북 공산주의 백성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보다도 넓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합니다.
그럴 때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은 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간순간만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멀리 멀리 영원까지 생각하십니다.
자손만대까지 생각을 하십니다.
그런고로 조금도 서두르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복을 안 주시나, 그러지 마세요.
예외가 없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 이름으로 주었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빗나가지 않습니다.
선행, 좋은 일 많이 하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길고 깊어서 저 멀리서 내게 응답하시고 보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은 높습니다.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높은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으로 높이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사랑이 있느니 없느니 막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은 깊습니다.
아주 깊고 깊은 물속을 보는 것 같이 아주 깊어서 잘 알 수 없습니다.
인간 아버지의 사랑도 깊습니다.말씀이 없습니다. 무뚝뚝합니다. 어떤 때에는 책망만 하고, 때리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엄청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깊습니다.
이 깊은 사랑을 깨달으면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풍성함은 그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인간으로는 측량치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III. 기도의 결론 (엡 3:20-21)
바울사도의 기도의 결론 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응답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20, 21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게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존 스타트」박사는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다섯 단계로 강력 하게 진술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있지 않고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루실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모두 수행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많이, 또는 더욱 풍성하게 행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의 은혜를 계산해서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욱 많이, 훨씬 풍성하게 이루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넘치도록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각, 꿈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은 우리 가운데서 능히 역사하시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능력, 즉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시고, 그를 하늘의 보좌에 앉게 하시며, 또한 우리를 일으키사 그와 더불어 거기에 오르게 하신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기독교인과 교회 내에서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꿈을 실현하실 수 있는 이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 영광이 있으라고 외칩니다.
그 분으로부터 능력이 옵니다.
그러므로 그 분께 영광이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바울은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몸 안에서 그 분께,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하는 찬송과 신앙고백과 함께 기도를 마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