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3:1-7 ㅣ 김남수 목사]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만 좋고 귀하게 보여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불행의 대부분이 오해해서 비롯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한 지 몇 년 되는 어느 남편이 자기 아내가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밉게 생겼고 구질구질한 것 같아 하루는 아내를 불러놓고 친정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착해서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옷을 곱게 갈아입고 화장을 정갈하게 한 다음, 남편에게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가라고 하시니 떠난다고 말하면서 슬프게 자리를 떴습니다.
이때 남편은 곱게 단장한 아내의 모습이 새롭고 아름답게 보여 그만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내에게도 잘못은 있었습니다.
평소에 단정하게 꾸며서 살아야지, 구질구질한 것을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튼 이 남편은 자기 아내의 가치를 오해하고 있다가 다시 회복했으니 다행입니다.
우리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살고 있으면서 그 가치를 몰라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해가 바로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 중에 특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뒤에야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가진 것, 되어진 것. 등 내가 처한 모든 것이 소중한 것임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불행은 오해이며 불신입니다.
은혜의 선물이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받아들여, 감사하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나 선물의 뜻을 모르는 자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바울은 은혜를 아는 자이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은혜라고 말합니다.“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이 바로 삶의 원천이었으며, 믿음의 근본이며, 행복의 뿌리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요, 원칙입니다.
모든 것을 선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담는 상징으로 소화했습니다.마귀가 낳은 것은 의심과 교만이지만,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인 자는 그 마음속에 믿음과 겸손이 있습니다.
불신과 교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과 저주와 원망이 가득 차서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 자체가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지 않겠다는 사람에게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엡2:8에서 믿음은 선물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믿어지는 그 마음 자체는 틀림없이 선물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겸손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믿음과 겸손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이 선물이요, 모든 것이 감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받은 은혜를 깊이 간증하면서 자기의 자기됨을,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선물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선물에 대한 바울의 간증을 잘 들어봅시다.
1절에 “이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이러므로”란 앞 2장에서 복음의 위대한 특권이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인 에베소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는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갇혀있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무슨 죄를 지어서 갇힌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갇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받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영광스럽게 생각하여 그 일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롬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여기서 신실한 예수님의 종은 바울과 같이 자기가 전한 복음 진리, 즉 십자가의 도를 전할 때 그 진리로 인해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 진리의 복음을 계속 전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 받은 성도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고난이 따르든지 안 따르는지 복음을 담대히 전파해야 됩니다(딤후 4:2).
2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에게 값없이 주신 그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혜의 경륜”이란 말의 “경륜”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안”입니다.
경륜의 의미는 일,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직분이 아니고 “오이코노미안”이라는 것을 이런 것입니다.
여기 집이 있습니다.
이 집에 있어서 기둥과 서까래와 바람벽과 창문 등 모든 부분이 저마다 제 기능(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집이 되는 것이지요.이러한 관계를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륜을 시간적으로 풀어 다시 설명 드리면 하나님의 구원의 시나리오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영원 전부터 계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바울에게 알게 해주신 것은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중생하고 나면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게 되는데, 이것을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거두어가십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엡2:10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해 서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복음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의 은사도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사용하여 일을 하면, 더욱 큰 은혜를 부어주시고, 은사가 활성화되어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더욱 더 성장하고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일할 자격을 구비시켜 줍니다.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계획에 관하여 여러 번 설교를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일 직분, 이방사도로 선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 속에 하나님의 일. 그 직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 직분 속에 내가 선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3절에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바울은 이미 엡1~2장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을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감추어놓으셨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울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뜻이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독교는 인간의 지식이나 탐구나 수양을 통해 알 수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의 계시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근원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비밀을 감추어두셨다가 바울에게 계시로 알게 해주셔서 바울이 이 비밀의 계시를 온 만방에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만 맡기지 않습니다.
일을 맡기시면 감당하도록 은사 계시의 영을 주십니다.
일을 주셨으면 영감도 주십니다.요새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는 세계가 그 동안에, 힘의 세대다, 자본의 시대다, 기술의 세계다, 정보의 시대다. 이러했지요.정보까지 왔지만 아닙니다.
지금은 영감의 시대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영감이 있는 자가 이 세계를 주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에게 맡기셨으면 직분만 맡기고 내버려두셨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계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딤전1:12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께 감사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실 때는 감당할 능력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맡기시고 내버려두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어떤 일을 맡기셨든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이기만 하면, 직분과 함께 넉넉히 감당할 능력, 은사도 주십니다.
또 바울은 좀 더 깊이 생각합니다. 계시로 내게 알게 하셨다 합니다.
4절에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 편지를 읽어 가노라하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자신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영감을 주시고, 계시의 영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신학화하여 체계화할 수 있는 성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주셨다. 이 모두가 선물이다 생각했습니다.
“비밀”이란 그것이 드러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비밀을 바울에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계시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읽으면 다 바울이 깨달은 것만큼 너희도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한 인간의 죄와 불의와 저주와 절망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므로 단번에 인간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입니다(엡2:1-10).
물론 이것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피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시는 없었습니다.
둘째는, 구약시대에 알려지지 않고 비밀로 있었던 사실은,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이나 버림받은 이방인이나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받고, 또한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엡2:11-22).
이러한 크고 위대한 비밀을 바울이 깨달았으며, 또 이것을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파하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 세상에서 깨닫지 못했던 비밀을 깨달은 것에 대한 자만이나 자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방인이던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서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하나, 특별히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역사하게 됩니다.
5절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바울은 어지간히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가졌지마는 계속 배척을 받고, 그는 이방 사람의 사도로 역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바울이 아주 적격자입니다.
헬라어에 능통하지요 헬라철학에 능통하지요, 로마시민권을 가졌지요.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방인의 사도 된 것,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사도와 선지자에 의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은 신약시대와는 달리 구약시대 사람들에게는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세대, 즉 앞 시대의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4000년 동안 감춘 비밀이 있었습니다.그 비밀을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이 완전히 공개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복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대속이나 이방인의 구원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누구든지 그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6절에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크나큰 비밀입니다.
유대민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서 자기들만 구원받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것은 선택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선민들과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라는 것도 큰 비밀이지만, 우리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과 똑같이 영의 선민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베풀어주신 그 모든 축복을 예수님 안에서 함께 받아서 후사가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는 것도 크나큰 비밀인 것입니다.
이 비밀은 이제 공개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누구나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 얻고, 치유 받고,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7절에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복음의 일군입니다.
“일군”이란 섬기는 자입니다. 직분에 따라 큰 일군, 작은 일군으로 구별할 수 있으나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일군입니다.
이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일군이며,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세우신 직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내게 주신 선물, 바울은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선물이 내게 있어서 내가 일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군이란? “디아코노스”. “minister”라는 말입니다. 봉사자입니다.
내가 선물을 따라 봉사한다, 섬긴다.보수나 상금을 바라보고 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 받은 마음으로 수고한다.일거리 자체가 선물이니까, 깨달음도 선물이니까, 영감도 선물이니까, 직분도 선물이니까, 나는 은혜의 선물을 따라서 봉사자가 되었다 합니다.
좀 더 깊이 본문을 상고해 보면, 성경과 현실, 자기가 처한 그 현실 자체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일입니다.
깊고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사로 수고하던 ‘리빙스턴’이 영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강연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그의 몸이 초췌해져 있었습니다.
체중이 37kg밖에 안됩니다.
남자 체중이 37kg입니다.
열병으로 고생을 해서 비쩍 말랐습니다.
사자가 물어뜯어서 팔도 다 떨어졌다가 도로 붙은 것인데, 간신히 붙어있는 것입니다. 몸이 인간적으로 볼 때에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그가 이렇게 그런 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고 있을 때, 대학생 하나가 “박사님, 저도 선교사로 가렵니다. 죽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하고 나섭니다.
그때에 리빙스턴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래야지요. 나도 그런 각오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셔야 되는 것이지, 가고 싶다고 가고,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직분이 바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주셔야 하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이 아니다 -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환경 현실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 - 지금 감옥에 있는 것, 그것도 선물이라고 합니다. 감옥에 가고 싶다고 아무나 다 감옥에 갑니까?
그가 처한 이 처지도 이것은 선물이더라. 그 말씀입니다.
선물은 특권입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통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벙어리, 장님 그리고 귀머거리, 이런 장애자인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설리반이라고 하는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귀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 설리반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하고 누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그분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분을 보내주셨겠지요.”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일을 맡기셨으니 감당할 수 있도록,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처지,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가지는 인간관계, 내가 만나는 시련, 모든 것이 선물이다. 바울은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선물은 특권입니다.
선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선물, Gift of the Grace.거기에 감격하고, 선물 받은 사람 된 기쁨과 감격, 어떤 과거가 있든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받아드려, 기쁨으로 감격 가운데 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