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1-3ㅣ김남수 목사]
기독교는 효를 주장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에는 동양 윤리의 근본인 부모에 대한 효의 가르침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효를 인간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200여 년 전 중국에 선교를 할 때의 일입니다. 중국은 유교문화에 푹 젖어있어, 기독교에는 효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마음을 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때에 만들어진 전도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출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라.” 또한 출21:17과 레위기20:9에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 죽이라”하였습니다. 신21:18-21에는 “패역한 자식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계도 듣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공회에 끌고 가서 증거를 대고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라” - 이 무서운 성경구절을 전도지에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다시 예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이삭이 27살이고 아버지가 127세였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제물로 바치라 하신다 할 때, 어느 자식 같으면 충분히 “100세가 넘더니 노망했구려.”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고 공경하여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께 절대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예들을 들고 “이것이 기독교입니다.”하였습니다. 이 전도지는 기독교가 철저한 효도의 종교라고 전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중국에 복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Ⅰ. 부모에게 하는 공경과 순종의 의미
오늘 성경 본문은 말씀합니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은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공경, 이 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유일한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높이 섬기는 것입니다. 낮추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또 수평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 이것은 존경입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 하는 것입니다.
미국 초대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어렸을 때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생각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며 짐을 다 꾸려 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려고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철철 우는 것입니다. 워싱턴은 그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하여 도로 짐을 풀어 놓고 어머니에게 순종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어머니를 떠났다면 그저 잘해야 선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큰 뜻을 품고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요” “어머니는 나보다 경륜이 있으니까요” 그를 높여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경이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 분은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Ⅱ. 네 종류의 부모
마르틴 루터를 비롯하여 종교개혁자들은 네 종류의 부모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루터는「대 요리 문답」이라는 교리서에 이것을 상세히 설명하여 교인들에게 암송하도록 하였습니다.
첫째는 나를 낳아 준 부모입니다.
둘째, 영적인 부모입니다.
교역자 목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교역자를 신부라 합니다. 영어로는 Father - 글자 그 대로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교인들을 대할 때 “~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마땅히 자녀에게 “~하게 ” 하지 않겠습니까? 교역자와 교인이 수직적 관계에 있습니다.
셋째, 지식을 공급해 주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부라고 합니다. 스승을 일컫는 말입니다. “랍비”라는 말에도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넷째, 정치가를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왕을 훼방하는 자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그 자리에 있는 한에는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들이 곧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Ⅲ.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
언론 보도의 앙케이트 조사를 보면 효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대답에 60%가 “부모의 속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극진히 섬기는 것이다.”라고 답한 사람은 6.2%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만연된 풍조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올바르게 잘 공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부모님이 꼭 필요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존재가치 그 분의 능력을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어머니. 우리 집에 어머니는 꼭 필요하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꼭 계셔야 합니다.” 그 한마디 말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합니다. 이 집에는 내가 필요하다 - 바로 이것이 어머니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들 집에서도 반가와 하는 것 같지 않고, 딸도 내켜하지 않을 때, 부모들은 자기들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인생이 서러워 집니다. 꼭 무엇을 해 드려서가 아니라, 어머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이시란 것을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둘째. 나 자신이 그 분의 자녀 됨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저는 아무개의 자녀입니다. 부모님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도 초등학교를 좀 다니다 말 정도였습니다. 학문이 없는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고하고 유식하고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링컨을 헐뜯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 연설을 할 때, 정적인 어느 국회의원이 공박합니다. “당신 같은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신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오!” 이런 모욕을 주는가하면 “구두 수선하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군!“ 하면서 구두를 벗어 들고는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오”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태연하게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모처럼 기억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하셨습니다. 구두를 잘 만드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 바가 있으니, 당신의 구두가 닳았거든 나한테 가져오시오. 내가 수선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떳떳하게 자랑합니다. 이것이 효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머슴이었습니다. 나는 머슴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직업, 선택,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사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시던 일을 나는 우러러 봅니다.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랑할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이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큰 효도는 없습니다.
셋째. 심려를 덜어 드리므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큰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이 큰 효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식이 이 땅에서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길은 바르게 사는 길입니다. 자식이 신앙으로 살며, 비뚤어 지지 않고, 반사회적 범죄에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갈 때, 부모는 그것을 효로 생각하고 더 없는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신앙생활도 아니하고,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일을 하고, 반사회적 범죄에 빠져 밤낮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면 부모에게 큰 걱정과 아픔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파 늘 누워 있으면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여 건강해야지 내 몸을 술독으로 만들고, 내 몸을 담배연기 굴뚝으로 만들어 건강을 잃고 병약하면 불효하는 것입니다. 또한 열심히 일하여 생활고에 시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않습니다. 또한 형제가 우애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일이요, 마음이 기쁘고 부모의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만일 형제간에 물고 뜯고 서로 싸우면 부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한 일이 있더라도 형제간에 서로 용서하고 용납해 우애하고 살아갈 때, 이것은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넷째. 부모의 노후생활을 돌보아 드리십시오.
노년에는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수입이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노년에는 자식을 의지 할 수밖에 습니다. 그런데 자식으로부터 냉대를 받는다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드려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부모의 생활을 돌아보지 않고 “복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가증한 기도요,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 진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노후대책을 마련해 드리는 것은 기본적 윤리요, 가정마다 전통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틈나는 대로 부모님과 대화하고, 주안에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외롭습니다. 이런 외로움을 자녀들이 달래주지 않으면 누가 달래주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결혼해서 분가했을지라도 틈나는 대로 양가의 부모를 찾아가 신앙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우리가 주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가정에 위로와 기쁨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날 것이요, 가족들의 행복이 더욱 증진될 것입니다.
다섯째. 부모님이 기쁘고 영화로움을 느끼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기쁘시고 영화로움을 느끼시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어느 때 영화로움을 느끼십니까? 부모는 자식들이 사회에서 모범적인 일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 영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칭찬을 듣고, 모범적인 일을 하여 인정을 받게 될 때, 부모는 인생의 큰 보람을 느낍니다. 축호전도나 노방전도를 나가서 어린아이를 보고 “야 이 녀석 잘 생겼다. 이다음에 한자리 하겠는데” 라고 칭찬부터 합니다. 그러면 그 얘 엄마는 칭찬이 좋아서 전도에 마음을 열고 귀를 엽니다. 자기자식 칭찬을 싫어할 부모는 없습니다.
또한 뛰어난 일을 성취하면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어렵게 사는 한 어머니가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만 데리고 분식집을 하며 사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 아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분식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올 때가 된 걸 알고, 우산 두 개를 들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가서 문 앞에 서서 자신을 보니, 아차! 일하던 모습 그대로 온 것입니다. 앞치마를 둘렀지요. 뭐 옷은 말이 아니지요.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었지요. 이 모양을 하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나 어떡합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우산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끝날 시간이 되어 저 2층에서 딸이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엄마 왔다”하고 손을 흔드는데 그 놈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하다고 안 나오나 보다 생각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한 달 동안 말을 안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그런데 한 달 후에 딸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발표를 하고 상 받는다고 하기에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 작품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우산을 들고 서 잇는 어머니, 비 맞으며 서있는 그 날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서 딸을 얼싸 안고 행복에 겨워했습니다.
여러분! 효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참으로 부모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흠을, 모든 부족함을 다 덮을 때, 그 이름을 높여 드릴 때, 그 속에 참 기쁨이 있고, 참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장수와 형통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효도해야 장수하고, 효도해야 한다고 성경은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Ⅳ. 하나님께서는 효성과 불효를 감찰하시고 그에 따라 복과 저주를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있은 이후,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누워 자고 있을 때, 둘째 아들 함이 이를 보고 형제인 셉과 야벳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노아의 옷을 취해 뒷걸음질 쳐 들어가 그 옷으로 노아의 하체를 덮은 후 다시 나왔습니다. 부모를 욕되게 한 함은 저주를 받았고, 부모의 수치를 가린 셈과 야벳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는 부모를 극진히 모셔 복을 받은 여인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룻기입니다. 젊은 룻은 과부가 되었지만 보아스 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겼습니다. 후에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룻이 낳은 아들이 바로 ‘오벳‘이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윗의 가계를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기사는 하나님께서 효성을 가진 사람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오늘 본문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공경, 이것이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경과 순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루터’는 [대요리문답]에서 4가지 종류의 부모를 말했습니다. 낳아준 부모,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신 왕부모, 그리고 영적인 생활을 지도해 주는 목사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4가지 부모 속에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 순종의 덕을 익히고야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장수하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