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0-11, 로마서 8:11ㅣ김남수 목사]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고상하고 값진 것인가? 바울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 좋았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분토와 배설물로 여기고 해로 여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행복이야말로 참 행복입니다. 그것만 얻으면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다 잃어버려도 좋다 할 만큼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버려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라는 헬라어는 “기노스코”(ginwvskw)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노스코는 아주 개인적으로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리나 이치, 진리를 배워서 내가 깨닫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적으로 알고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머리로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몸으로 아는 것입니다. 말로는 이해 할 수 없으나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큰 감격으로 아는 지식을 말하고, 그 속에서 평안과 안정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기들은 신기하게도 어머니를 정확히 알아봅니다. 다른 사람이 안으면 울고, 제 엄마가 안으면 좋아합니다. 자기 엄마와 얼굴이 마주치면 좋다고 까르르 웃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아기가 엄마를 안다고 말합니다. 나이나, 고향, 결혼한 날짜 등 아무것도 그 아기는 모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것을 본능적으로 알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아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알고, 믿음으로 알고, 몸으로 아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체험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아픔을 아는 순간, 그 아픔 자체가 그대로 내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몸에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아픔이 몸에 느껴옵니다.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식이요 사랑입니다. 아는 것입니다.
Ⅰ. 내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마음, 그 기쁨이 내 마음에 전달되고,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동일시되는 체험,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시되면 불쌍한 사람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마음이 작동하는 아픔입니다. 도와주어야 할 사람을 도와주지 못했을 때에 괴로워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알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중심으로 아는 것이요, 그 중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바울이 경험한 대로는 예수님은 부활하면서부터 예수님입니다. 이 부활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의 권능”--이것이 핵심이요, 부활사건이 없는 예수님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부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부활의 권능”을 자기가 참예하여 알고자 했습니다. “부활의 권능”을 몸으로 체험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권능, 병을 이기는 권능, 핍박과 환난을 이기는 권능, 사망을 이기는 권능, 그 놀라운 큰 권능을 체험하겠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바울은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합니다. 그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부활의 권능에 동참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동참하지 않고, 부활의 영광에만 참여 하겠다는 것입니다. 영광, 권능만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슬픔에 참여해야 기쁨에도 참여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관한한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안 다음에야 “부활의 권능”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하여”(빌3:10)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할 이요 생명이다”(요11‘25)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 믿음을 통해 안식을 경험하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오는 아침, 여러분 안에 “부활의 권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모두가 성령 안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 분의 부활의 능력에 대한 바른 이해에 도달하기를 원하십니다.
Ⅱ.성령세례가 부활, 바로 “부활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성령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여러분 속에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죄가 깨뜨려지고, 병이 치료되고, 병을 치료하고, 부활이란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으로 인해 여러분이 다시 활기차게 살아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부활! 부활이란 단어가 예수님이라는 단어만큼 중요합니다. 부활과 예수님은 같이 갑니다. 예수님이 곧 부활이요, 부활의 권능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만일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양보한다면 그러한 삶으로 인해 당신의 주위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신이 “부활의 능력”을 정말로 안다면 아픈 자를 치료하고, 이를 통해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이 각종 악에서 떠나 성령의 삶을 사는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그러기에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성령세례”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중요합니다. 부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을 말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점점 더 큰 힘을 주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차원에 대해 알려주며, 압박을 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전에 가보지 못했던 높은 차원으로 데리고 가고자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나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분들에게도 오늘은 새로운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과 성령은, 사람의 은혜와 생명과 영보다 수백만 배 수천만 배 더 강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특별한 곳에 서게 됩니다. 그 결과 당신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죽었던 영혼이 소생케 되고, 처졌던 여러분의 육체가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성이 우리를 더 이상 지배 할 수 없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Ⅲ. 부활하신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줍니까?
1.그리스도를 닮는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1)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성령의 권능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게 하셨다.(롬4:25)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믿는 자 안에 살아 계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권능이 함께 함으로 새롭게 살 수 있도록 영혼을 소생 시키고 활력을 되찾게 해 줍니다. 이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 속에 함께 사시며 새 삶을 살도록 활력을 주십니다.
2)부활의 권능은 성화시킵니다.
성화의 목적으로 믿는 자 속에 그의 성령을 보내신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항상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바울은 이 성화의 권능, 곧 죄를 파괴하고, 개인적인 성결과 효과적인 증거를 가능케 하여 주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권능을 공급 받기를 갈구 했습니다.
3)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도의 영화를 보증해 줍니다.
이 영화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포함되며,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포함합니다.(빌3:21)
2. 선한 사역을 할 수 있는 권능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권능을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사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안에서 부활하신 채로 사십니다.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권능이 우리에게 생명을 넣어 줍니다. 그 영광스런 “부활의 권능”이 우리 안으로 밀려들어 올 때 “부활의 권능”안에서 강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부활의 권능”을 소유하기를 바라시며 그것을 오늘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로 믿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자는 “부활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1)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부활의 권능이 흘러 들어가 주님께서 그 병을 부활의 권능으로 치유하십니다.
간염, 당뇨, 관절염, 심장병, 위장병, 신장병 등의 병과 소경, 귀머거리, 중풍, 등 각종 질병과 암을 치료하십니다.
2)죽은 자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 보면 도르가 가 죽었을 때에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보냈고 베드로가 왔을 때, 과부들은 그녀가 그들에게 만들어 주었던 옷을 보이며 울었습니다. 도르가는 자선의 삶을 살았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그 삶을 바쳤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베드로가 도르가에게 한 사역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했으며, 그가 “도르가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죽은 그녀가 눈을 떴고 살아났습니다.(행9:36-42)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며 그녀를 살리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죽은 유드고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에 의해 살아난 두 사람의 예를 더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시고 12살의 소녀를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입니다.(막5:43)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살아나 일어났습니다. 또 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독자를 살리신 일입니다.(눅7:14-15)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청년을 상여에 메고 나인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는가?”보라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방법이 아니라, 주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 과부를 향한 동정심이 죽음보다 강했습니다.(눅7:11-15)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죽은 자가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미드 위글스워스는 죽은 자를 14명을 살렸고, 아르젠티나에서 선교하는 미국인 한 선교사는 죽은 자를 26명이나 살렸습니다. 오후 훈련 시간에 볼 비디오테이프에도 프란시스의 설교에 비디오 학교에서 훈련 받은 소심한 평범한 여성을 통해 물에 빠져 죽은 어린이가 살아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비디오 학교에서 훈련받은 무명의 선교사에 의해 기도하고 죽은 시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영혼아 돌아오라고 명하자 살아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세에 내가 늦은 비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지금 그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시대가 초대교회 때보다 더 악하기 때문에 갑절의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모두 다 병든 자를 고치며, 어떤 분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죽은 자들도 살리는 역사를 일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부활의 권능을 사모하여 예습 복습을 꼭 하심으로 열심히 훈련을 받으십시오. 부활의 권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Ⅳ. 부활의 권능을 받으려면 사모하여 성령세례를 받으십시오.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 분이 계실 곳을 내어드리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에게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 분에게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 드릴 때, 우리의 몸을 그 분의 성전으로 삼으셔서 우리에게 들어와 거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의 몸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육체 안에 거하실 때만 여러분의 몸은 성전이 됩니다. 오순절 날 사도들과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의 마음과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행1:14)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사모하고 받을 때까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눅11:25) 주님이 말씀한 이러한 기도는 “성령세례”를 간구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지혜롭고 처신을 잘하는 신중한 사람과 어린아이와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만일 이 시간 여러분이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들을 부활의 권능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초자연적인 곳에 다다르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만일 우리가 이 시간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성령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여러분이 갖게 됨으로 인하여 여러분들에게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