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17-23ㅣ김남수 목사]
성프란시스는 제자를 선택할 때 우리처럼 종이에 써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이모저모로 살펴서 제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배추 씨를 뿌려서 배추를 작게 키워가지고 다시 넓은 곳으로 옮겨 모종을 하는데 그 일을 시키면서 성프란시스는 제자가 되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거꾸로 심어라”라고 했습니다. 즉 “뿌리를 하늘로 줄기를 땅으로 심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거꾸로 심었더랍니다. 나머지는 다 ‘프란시스가 뭘 착각한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제대로 심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 떨어지고 거꾸로 심으라니 거꾸로 심은 오직 그 한 사람만이 합격하여 그 수도의 길을 갈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바로 순종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순종이란 말의 뜻을 좀 생각해 봅시다. ‘순종’이란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원 뜻은 ‘듣는다.’입니다. 사무엘은 ‘샤마엘’입니다. 즉 사무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라고 할 때 이 뜻은 청각으로 듣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순종하고, 교회에서는 교역자에게 순종하고, 직장에서는 상관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믿음의 실천이요,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전 반드시 ‘순종하는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성도는 이생과 내세에서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사람은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러므로 저는 이 시간 성도의 순종에 관해 상고해 봄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불순종의 위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자신의 뜻을 앞세워,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아 멸망당한 사울 왕을 봅시다.
사울의 불순종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본래 키가 보통사람보다 머리만큼 더 컸지만, 스스로를 작게 여겼던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된다는 말을 듣자 뒤주 뒤에 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자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아말렉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승리하고 나서 자기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또한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적군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셨으면 그대도 순종해서 진멸해야 하는데, 자기의 뜻과 감정을 개입해서 자기 생각으로 선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아니하였으며, 기름지고 좋은 짐승은 전리품으로 가지고 개선한 것입니다.
그는 이를 지적하는 사무엘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라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떻게 들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본주의에서 나온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위배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셨으면,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사울이 이 점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문에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라는 정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전쟁에 싸우다가, 사무엘의 예언대로 하나님께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선해 보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여도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습니다. 이러므로 성도는 인간의 생각을 철저히 배격하고 하나님께 절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십시오. 순종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따르지만 아집과 고집이 죽는 희생도 따릅니다.
그러나 그 희생, 그 죽음에는 부활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당장 눈앞에 이익을 얻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인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야 말로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런 희생의 순종을 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크게 씀임을 받는 것입니다.
전에 목회자 세미나를 할 때, 어느 교회의 사업을 크게하는 성도님이 찾아와 저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성도님은 ‘목사님! 교회에 헌금을 작정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더 크게 발전시켜 나중에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하나님의 일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라며 자기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들으면 선하고 합리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울 왕처럼 인본주의에서 나온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말인 것입니다. 저는 그 성도님을 위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님! 하나님께 약속했으면 약속하고 서원한 것은 지체지 말고, 신속히 이행해야 합니다. 신23:21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미루면 죄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이 번창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6:33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약속하신 대로 믿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하면 형통케 되고 번창할 것입니다.’라고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인사하면서 돌아갔는데, 그 성도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작정한 헌금을 먼저 하나님께 드림으로 사업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두 번째로 참 신앙이란 희생적인 순종의 삶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크신 뜻이 세상에 가셔서 인간 대신 십자가에 고난 받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임을 아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러므로 요18:11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신 십자가인데 십자가를 내가 져야지, 마다할 수 있겠느냐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덕을 높이 사서, 히5:8,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26:38)라고 토로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의 결론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였습니다.
이 비장한 희생적인 순종이 인류를 죄악과 질병과 사망에서 구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대속의 은혜를 이 시간 생각해 보십시다. 잘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어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놓으셨습니다. 이러므로 죄 사함은 우리의 것, 곧 나의 것입니다. 나의 것이니 믿고 이 말씀대로 받아드리면,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담당하시어 병을 짊어지시고,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즉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you ware healed' 바로 ware는 과거형 입니다. NIV성경은 have been으로 과거완료를 썼습니다. 나의 병은 과거에 이미 고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유는 나의 것입니다. 이미 나는 나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나의 치유자로 받아들이면, 치유는 나의 것이 되어, 치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음을 얻을 것이라 믿고, 만졌더니 나았습니다. 주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당신이 믿으면,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고 치유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값을 치루고 사신 구속의 역사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롬10:10), 진리가 우리 것이 되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0:9,10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헬라어로 ‘쏘조’인데, 구원, 치유의 뜻입니다. 이 시간 당신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해 놓으신 구원을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시인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다음 기도문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의로 구속함이 내게 가능케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나를 깨끗케 하심을 믿습니다. 지금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며 받아 드립니다.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다음은 ‘병 고침의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과 병을 담당하시어 짊어지시고,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나는 병 고침 받았습니다. 주님이 나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나의 치료자로 인정하고 고백하며 받아들입니다. 나의 병을 주님이 고쳐주심으로 나는 건강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순종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순종과 복은 정비례입니다. 하나 순종하면 복이 하나오고, 둘 순종하면 복이 둘이오고, 셋 순종하면 복이 셋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순종의 열매로 형통함과 기도응답의 축복 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잎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아브라함은 고대하고 고대 했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100세에 얻었습니다. 아들은 희망의 꽃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는데,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자기의 친 자식을 잡아 불로 태워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더 처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큰 충격과 번민 속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숱한 믿음의 수련을 통해 순종을 배운,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번제에 쓸 장작과 횃불을 들고 모리아 땅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올라가는 도중, 이삭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물었을 때, 그 순간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곳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아! 하나님께서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단다.’ 이 말을 들은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하십시오.’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단 장작 위에 눕습니다.
아브라함이 단에 누운 이삭을 칼을 높여 들어 내리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막으며 ‘순종의 시험’에 합격했음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그리고 이어서 창22:16~18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져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시험을 치르시고, 그 시험에 합격한 성도에게 위대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신앙의 척도입니다. 순종이 없는 신앙인은 기도해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면 가치를 따지지 말고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이 없는 신앙인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예봄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먼저 영혼이 잘되고, 하는 일도 복을 받아 형통케 되며, 전인이 건강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으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에게도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