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4ㅣ김남수 목사]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첫 수학한 보리 한 단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유월절 이튿날 하나님께 요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안식일 이튿날 즉, 주일날에 첫 열매로 부활하실 것을 예표한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50일 후면, 대추수가 시작되는데,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날에 수확한 곡식으로 떡 두 덩이를 만들어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요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 오순절날에 성령이 강림하시어 영혼의 추수가 시작되어 신약교회가 탄생하므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 영혼이 추수될 것을 구약의 의식을 통해 예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시므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음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사회학교수인 하비 콕스(Harvey Cox)는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비 콕스는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대학자입니다. 30년 전 “신은 죽었다”는 신학이 유행했는데, 하비 콕스는 「세속도시」라는 명저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농촌뿐만 아니라, 죄악이 창궐한 세속도시에도 살아 역사하신다”고 갈파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30년 후인, 오늘날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불길」(Fire from heaven)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하기를 “교회는 성령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은혜로 인해서 교회는 존재하고, 교회는 부흥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성령체험은 지식이나 감정이나 의지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받는 것은 영혼의 문제다, 그래서 이것을 원초적 성령, 원초적 신앙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하는 단순한 믿음, 이것이 원초적 신앙이다”, “기도하면, 병이 낫고, 하나님의 뜻이면 병을 이길 수 있다. 이런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신앙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 성령이 충만하여”의 “충만”은 헬라어로 “프레데이스”입니다. 성령충만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일상생활 충만인 “일반적인 은혜”로 진리를 받아 들여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 기독교의 기본 핵심진리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믿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믿는 자를 성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닮아 성장시킵니다. 이와 같이 믿는 자는 누구나 성령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성령충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 받았다는 것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누구나 사모하고 구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충만은 성령께 붙들려 그의 영에 포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그를 포로로 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적인 역사”, 주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성령께 붙잡혀 주님만 생각하는 마음, 세상 일은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 핍박을 받고, 매를 맞아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영혼을 추수하기 위해서 권능과 은사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영혼 구원에 열정과 열매가 있습니까? 오순절 성령체험을 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임하신 모습을 이렇게 3가지 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① 급하고 강한 바람
②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③ 다른 방언으로 말함
첫째,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신 성령입니다.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고 했습니다. 성령을 바람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성령이나, 사람의 영이나, 바람을 “루아크”라고 합니다. “루아크”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헬라어로도 성령, 사람의 영, 바람을 “퓨누마”라고 합니다. “퓨누마”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이라고 하면 약간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귀신이나 죽은 혼령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을 옛날에는 성신, 거룩한 귀신으로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문자적으로 하면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성령을 바람이라 합니까? 바람의 특성과 성령의 특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바람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신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토네이도, 회오리 바람은 자동차도 빙글빙글 들어 올리고,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나면 폭탄이 터진 것처럼 폐허가 됩니다. 허리케인 같은 태풍도 그렇습니다. 허리케인이 불면 대륙이 흔들리고, 강한 바람과 파도, 폭우로 농경지가 모두 유실이 되고, 집들이 폐허가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령을 바람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바람은 공기의 이동인데 묵은 ?은 공기를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의 기운으로 새로움을 가져옵니다. 성령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임하셔서 위대한 새로운 운동과 큰 변혁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바람은 바람인데 옆에서 부는 동풍이나 서풍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급하고 강한 바람입니다.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도 같이 쏴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고 방안에 가득하게 머문 것입니다. 그 의미는 성령은 우리의 일부분에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채우고, 몸과 마음을 채우며,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채우는 것입니다. 성령은 전인격 전 존재를 채우고, 가정과 사회 국가를 채워 큰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태풍 같은 큰 힘으로 거대한 변혁과 부흥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합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알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합니다.
성령은 거대한 변혁의 바람입니다. 오순절날에 임하신 성령님은 겁쟁이 어부들과 120명을 삽시간에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가득 채워지자 예루살렘을 온통 변화시켰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인간의 말로만 복음이 전파되면 변화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을 통해서 전파될 때, 온 인류를 변화시키고 위대한 능력과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복음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우리는 급하고 강한 성령의 바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하신 성령입니다.
3절에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니”라고 했습니다. 불도 아니고, 혀도 아닌, 불의 혀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각 사람 위에 머문” 의미는 개별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권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위에 임하신 성령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위에 임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다스리기 위함이요, 우리보다 높이 계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멀리 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불은 어두움을 밝혀 줍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부귀영화공명만 생각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음이 환하게 밝혀 주어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를 예수님 안에서 확실하게 알게 해 줍니다. 불은 또한 따뜻하게 해 줍니다. 성령께서 냉냉하고 차가운 몰인정한 세상에 사는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기도하게 하시고, 사랑과 인정이 넘쳐나게 만들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동력의 근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속에 능력이 생겨납니다. 기도와 전도의 능력이 생겨나고, 신앙의 힘이 솟구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는 능력이 마음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령은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와 같이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고 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불의 혀와 같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 생활을 바꾸어 놓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 대신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고, 사랑의 말, 창조의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혀가 달도록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혀가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여 감사할 때, 성령은 우리를 초인적으로 능력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은 임하셔서 다른 방언을 말하게 하십니다.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다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므로 듣는 사람들이 자기나라 말로 들었습니다. 8절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뇨?”하며 놀랐습니다.
우리는 의사를 전달하는데 언어가 중요합니다. 바레인, 매대인, 엘람인, 유대인 …… 이렇듯, 각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방언을 전부 자기나라 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헬라사람에게는 헬라말로, 로마사람에게는 로마말로, 애굽사람은 애굽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완전히 통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듣는 자에게 통역을 해 버린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게 해 버린 것입니다.
바벨탑사건 때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는데, 성령이 임하시므로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한 단일 언어 민족처럼 서로 의사가 통한 것입니다. 그들이 11절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고 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듣게 된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가 통역이 없이 그대로 통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장의 방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내내 말씀을 들었는데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음문을 열게 하고, 말씀을 듣고 이해하게 하며, 교만을 버리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 통하는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장 방언과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는 다른 방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2, 14장 방언은, 못 알아듣는 방언입니다. 사도행전 2장 방언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할지라도 성령 받음으로 모두가 알아 듣게 됐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못 알아 듣는 방언이며, 영으로 비밀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방언은 방언을 하면, 자기의 영혼에 덕을 세웁니다. 이 방언은 우리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임하시면 큰 권능으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권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마음을 열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성령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은, 성령을 사모하고 목말라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7:37~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는 그를 믿는 성령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이 오셔서 사로 잡으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성령께 드려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5:32절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님을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다스리시도록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충만이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구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하면,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성령을 충만이 부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