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6:7-8, 13 ㅣ 김남수 목사]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으시지요? 인간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독생자를 보내 구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역사라고 합니다. 이 선택의 교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을 구원하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부르심입니다.둘째는 특별한 선택으로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도적인 선택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역사를 베푸실 때 당신의 사람을 부르시어 구원하시고 특별히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쓰실 때에는 재능과 능력, 열정과 경험을 주십니다. 또한 건강과 물질도 주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은혜 이전에 인간 자신이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하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됨의 그릇이요, 근본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은사와 재능과 열정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받을 그릇은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선택해 복음과 교회를 위해 큰 역사를 이루도록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있는 자격 하나를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셨다.’라고 합니다. 즉 바울의 충성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선한 일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여 쓰십니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신 구원사역에 붙들리어 하나님께 쓰여 진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요, 큰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이 힘든 고난의 길이든, 즐거운 형통의 길이든, 문제 삼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쓰임 받음에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어떤 사람을 쓰시고 또한 어떤 때에 버리시는 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우선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는 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와 용모를 보시지 않습니다.삼상 16장 7절에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우선 눈에 보이는 외모에 지나치게 치우치고 있습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 그중에 남자는 98%가 여자의 외모에 점수를 준다고 합니다. 여자도 남자의 외모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입사 면접 때도 외모와 태도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다윗의 정직함, 신앙심 그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람의 과거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가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느냐? 혹은 방탕했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여 의롭게 만들어 쓰시는 것이므로 과거의 그의 업적이나 경력은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과거 유대교를 믿었을 때 기독교에 관해 핍박자요, 그리스도인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며 핍박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는 옳은 일이라고 찬성투표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체 참으심으로 그를 불러 구원해 주셨으며, 이방 사도로 크게 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를 보시지 않으시며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 얻는 자에게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묻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받았을 때 자기는 말을 할 줄 모른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호되게 책망하시며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내가 가라고 하는데 무슨 변명이냐?’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는 깨끗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앙적 용기와 순종의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2.이제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을 중심으로 성경에서 몇 가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쓰십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하면서 자신을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리하면 그들도 네게 들은 바를 변개시키지 않고, 그대로 충성스럽게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또한 고전 4:2절에 ‘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사람이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많다 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고 그만 두거나 그 일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변질시킨다면 하나님 나라는 서지 못하고 중도에 변질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쓰시고, 그 충성을 장차 하늘 나라에서 인정하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시지만 교만한 사람은 쓰시다가도 중도에 버리시고 물리치십니다. 예를 들어 사울 왕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될 때에는 보통사람보다 키가 어개 위만큼 컸지만, 겸손하여 자기를 지극히 작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자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의 겸손은 지속성이 없이 교만해져, 자기의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그가 교만해지자 하나님께서 그를 버려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건 관계없이 끝까지 겸손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지위, 부,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상관없이 끝까지 지속적으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버리시지 않고 계속 쓰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겸손하면서도 용기 있는 거룩한 분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섬기고, 하나님을 높이 받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를 보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분노하여 소년 다윗이 달려 나가 물맷돌로 거인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다윗은 겸손한 의분이 있는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탐욕과 욕심이 없는 사람을 쓰십니다. 삼상15:19절에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하였나이다.’고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을 문책했습니다. 탐욕은 사람의 맑은 눈을 어둡게 하고 우매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범사에 탐심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은혜로 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은사, 재능, 물질 등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이 지혜요, 또 더 많은 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올바로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더 많이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명예에 대한 탐욕, 물질에 대한 탐욕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맑은 총명과 지혜를 주시고, 계속 복을 주시며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다윗을 쓰셨습니다. 시편에 실린 다윗의 찬양과 시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들여 올 때에는 너무 좋아서 그 행렬을 따르며 부끄러움도 잊은 채 춤을 추웠습니다. 이렇듯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신앙적 감동과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극히 예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나아가 다윗은 철저하게 교회 중심의 사람이요, 성전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는 준비를 모두 다 하였고, 성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지장이요, 명장이요, 용장이요, 주님의 그림자인 성군으로 크게 쓰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회개할 줄 아는 다윗을 쓰셨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잘못을 나단 선지자가 꾸짖었을 때 다윗은 아무 변명 없이 그 자리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회개했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돌리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적받았을 때 부끄러운 일이지만, 솔직하고 정직하게 회개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종 다윗은 정직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저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라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결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책임을 질 줄 알고, 잘못을 인정하며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정직한 다윗이었기에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하게 회개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을 보십니다. 여섯째 다윗은 자기 위치를 알고, 그 자리에서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쓰셨습니다. 다윗은 굴에서 자고 있는 사울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셨기 때문에 옷자락 하나 배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것을 알고 다윗을 계속 죽이려 하였습니다. 또한 사울은 전쟁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가기 위하여 제물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렸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주제넘게 자기 위치를 떠나 제사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떠나 망령되이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일보다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시기하여 비방하거나 자신을 따르도록 평론하여 하나님의 공동체가 서지 못하게 분란 시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묘히 이간시키므로 자기를 따르도록 하는 영은 하나님의 영이 아닙니다.우리 교회는 서로 화목하고, 서로 칭찬하며 세워주며, 모두 하나가 되도록 합시다. 내가 할 일은 본인의 자리를 지키며 겸손히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가 속한 공동체가 평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다윗을 사용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주셨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나라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모름지기 우리나라도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겠습니다. 선한 목자가 있어야 양들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했듯이 하나님께 합심하여 나라를 위해 기도드리십시다.
‘주여! 이 민족 앞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선한 뜻을 충성되게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를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