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41-47 ㅣ 김남수 목사]
기독교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출발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의 영향력은 매우 컸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서신이나 일반서신에 ‘서로서로’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공동체를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삶은 결코 주일 중심만이 아니었습니다.
행 5:42에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삶의 현장인 집에서 날마다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였고 집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쳤으며 또한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나 성전에서나 가르치는 사역의 내용이 전도와 가르침으로 똑같았습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고, 그들은 가는 곳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셀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셀교회의 성공의 열쇠가 바로 이 공동체 의식, 공동체 정신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셀교회의 성공의 절대적 요인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행 2:44~45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해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핵심은 말 그대로 공동체 정신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왜 셀모임을 회피할까요? 공동체 정신이 희박한 개인주의 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즉 ‘따로 나 혼자 노는 것이 좋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저 밑바탕에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한 유기체를 생각해봅시다. 살아있는 무수한 세포들은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임무를 제 위치에서 열심히 수행합니다. 전문화된 세포들은 효소들을 생산하고 침입자들과 싸우며 정교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공동체적으로 상호의존하며 일합니다. 상호의존, 협력, 의사소통 그러한 살아있는 무수한 세포들의 역할분담과 균형이 없다면 세포의 공동체는 죽어 사라지고 맙니다.
공동체가 그 생명자체를 위해서 필요하듯, 공동체 역시 살아있는 존재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서로 더불어서 공동체 안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진 공동체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적인 공동체란 어떤 것이며 그 기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구약의 공동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십니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공동체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참되시고 한분이신 하나님께서 왜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기로 결심하셨을까요?
삼위의 하나님이란 공동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면서도 상호의존 방식으로 함께 일하십니다. 예를 들면 성부 하나님은 모든 것의 기원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는 영적 권위를 소유하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리를 가져왔을 때 우리의 죄를 대신할 희생제물이 되시고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 받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운데 함께하시고 우리 속에 사시는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들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으로 이끌어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는 역할을 분담하여 상호의존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때, 삼위 하나님이 상호의존 관계에 계시듯이 우리도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동체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시며 교회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셀교회의 사명 중의 하나가 공동체의 회복인 것입니다.
다음은, 인간 공동체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동체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도 서로와의 관계성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인간은 공동체를 갈망한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며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배우자를 창조해 주시므로 인류 첫 번째 공동체인 가정이 만들어졌습니다.
공동체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태어나는 그 시점부터 우리는 공동체 환경에서 생존하게 됩니다. 갓난아기는 생존을 위해서 그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성장해감에 때라 부모로부터 음식, 의복, 보금자리를 얻게 됩니다. 가족공동체에 의해서 말을 배우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며 사랑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가족과 공동체와의 관계로부터 떠나서 정상적으로 충족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영적피조물이 됩니다. 우리는 새 피조물로서 옛 삶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육적출생이 지상의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영적출생은 영적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적가족들과의 관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정상적으로 충족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파괴
그런데 사단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 공동체는 파괴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공동체도 일순간 깨어진 때가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고 희생제물이 되실 때 하나님께서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깨어졌습니다. 오늘날 가족제도는 죄로 인하여 깨어져가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기 마련입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처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고밀도로 모여 산다 해도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닙니다. 좁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그저 개별적으로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두려움에 매어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염두에 두시고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사5:7절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여기서 족속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생각할 때 12부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12부족은 이스라엘의 소그룹 기능을 해왔습니다. 이 사상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새 이스라엘의 형성을 언급하고 있는 계시록 7장에서 여전히 12라는 숫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약시대 공동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동체 정신은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12명으로 제자단을 만드신 것은 12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주님은 열둘을 세운 이유를 막3:14~15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들은 전도하고 축사사역에 앞서서 주님과 ‘함께 있어야’했습니다. 주님은 3년간의 공동체의 삶을 통해 사랑의 라이프스타일과 용납의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12명의 제자에게 헌신한 삶이었습니다. 랄프네이버는 열둘 제자의 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이 12명의 사람의 공동체도 한계, 이기심, 무지와 질투를 숨긴 가면의 삶을 살기에는 매우 위험한 곳임을 발견했습니다. 서서히 매우 서서히 이 사람들은 그들의 경쟁적 라이프스타일을 버려야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공동체 핵심이 소속감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을 내어주도록 얼마나 준비되었는가는 자신들의 명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오순절전에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모여 기도에 힘쓰며 공동체 안에서 교제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이루어진 기도와 친교에 의해 제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권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된 그들 위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공동체는 1세기 교회의 셀 그룹들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2:41~47을 통해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8:1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도 성전 밖으로 쫓겨났고 그들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졌습니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지역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모였던 가정교회, 공동체였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음식을 함께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했으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로 섬겼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표적과 기사에 의해 보여 졌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나오도록 했으며 그들을 교회의 셀 그룹 안으로 데려왔습니다. 셀 그룹은 활화산처럼 번져갔으며 온 유럽이 복음화되고 로마는 기독교를 결국 국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서로간의 교제하는 공동체를 경험한 셀 그룹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으로 묘사되는 소그룹입니다. 기독교 기본 단위도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소그룹 셀 교회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셀 그룹은 공동체의 상호의존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크기였습니다. 그룹의 크기가 12명을 초과할 때 공동체의 친밀함은 깨뜨려집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제자들을 선택할 때 상호의존성 안에서 자신과 연합되도록 12명을 선택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교의 모든 요소는 그리스도의 몸인 셀 그룹 교제 안에서 가장 잘 경험되어집니다.
셀 그룹의 일원이 되는 것은 새롭게 확대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셀 멤버들은 당신의 영적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가족들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 형제, 자매, 친척, 이웃들을 보면서 그들을 모방하고 어떻게 사는지 배웁니다. 영적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에 새 아이들이 태어나면 그들의 영적 아버지, 어머니, 자매, 형제들을 보면서 배웁니다. 바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우리의 관계가 건전한 가족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셀 그룹은 셀 리더와 예비리더에 의해 인도됩니다. 대개 이들은 셀의 영적아버지, 어머니입니다. 그들은 셀을 이끌어갈 때 섬김과 솔선수범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셀그룹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그를 예수님께 인도했던 사람에 의해 제자화 됩니다. 가족의 주된 기능 중 하나가 재생산입니다. 셀 멤버들은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노력해야합니다.
셋째 공동체에 들어가 공동체를 세우기
셀 구성원이 된 후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공동체를 세우는 6가지 방법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공동체로 들어가기 전에 당신은 하나님과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기도, 성경읽기, 성령께서 우리 삶을 통해 일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둘째로 공동체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즉 당신의 야심과 목적을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주된 목적 뒤에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당신의 시간을 셀 멤버들의 삶에 투자하십시오. 셀 멤버들과 질적으로 유용한 시간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들의 애찬을 나누고 교제하시고 셀 그룹 사역을 할 때 함께 일하도록 하십시오.
넷째로 셀 그룹 안에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을 고려할 것을 결심하십시오. 인내심으로 갈등을 풀어가며 각 구성원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다섯째 자신의 마음을 그룹에 오픈하십시오.
여섯째로 당신 자신을 셀을 섬기는 사역에 전념하게 하십시오. 섬김, 관계전도는 다른 셀 그룹 섬길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행하십시오. 팀의 한 부분이 되십시오.
셀 그룹이란 모임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서 세워진 경험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셀 그룹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루시며, 우리가 주님의 형상으로 다시 지음 받도록 일하십니다. 삶 속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셀 가족이라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 거대해서 극복할 수 없는 방해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봄교회 셀 모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공동체를 세워져 계속 성장해감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멋진 가족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데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