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장을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신약교회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건물이 없었다고 해서 대규모의 집회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신약교회의 일상적인 모습은 각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교회의 형태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 교회를 통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들은 양육되었습니다.
또한 그 안에서 교제와 기도와 찬송이 있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신약교회는 예수님이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후 나타난 첫 교회였기에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의 모습에 근접합니다. 하지만 신약교회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는 끊임없이 싸웠고 꾸짖고 교훈했습니다.
우리는 2천년이 지난 이 시대에 신약교회와 같은 교회를 꿈꿉니다. 엄청난 시대적 갭(Gap)이 있지만 원리적 측면에서는 달라질 것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가 문제화되는 교회가 있고 그냥 넘어가는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교회의 문제란 이단 사상과 같은 아주 큰 이슈일 때도 있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교인들이 애찬을 할 때 늦게 오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다 먹어 치워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고, 예루살렘교회는 부잣집 여자들이 너무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임에 참석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큰 문제로 발전하고, 그 문제 때문에 교회(목장)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방적 차원에서 목장(모임)에서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는 몇 가지를 나눠보면 첫째, 문제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 집단에나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단한 사안이 아닌 문제는 키우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넘어갑시다.”라는 말을 자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장모임에서 들어보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면 누구든 먼저 이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공동체성(하나 됨)을 깨뜨리는 사안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인간적인 생각이나 감정으로 접근하지, 이런 생각을 잘못합니다. 중요한 문제란 신약교회처럼 가만히 들어온 이단이 될 수도 있지만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목원들의 말과 행동입니다. 이런 언행을 새가족 VIP가 할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 주지만 기신자나 이제 VIP 딱지를 뗄 때가 지난 교인들이 하게 될 때는 참는 게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런 언행을 하는 이유는 진짜 몰라서, 알면서도 사안의 심각함을 몰라서, 아니면 베어진 습관을 못 고쳐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장산교회 이정우목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