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할 때, 상식 가운데 하나가 “교인들끼리는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입니다.
성경에서는 돈을 꾸어주는 것에 관하여 “이자를 받을 목적으로 돈을 꾸어주거나, 이익을 볼 셈으로 먹을거리를 꿔주어서는 안 된다(레 25:37)” “외국 사람에게는 꾸어주고서 이자를 받아도 좋다. 그러나 친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못한다.(신 23:2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교인 중에 돈을 꿔달라고 할 때 여유가 된다면 거저주라!는 것이 성경적인 답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부르짖는 교회가 매정하게 왜 이렇게 할까요? 돈이 교인들 간의 관계를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에서 목회할 때 아내가 성도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는 갚지 말고 원금만 매달 조금씩 갚으라” 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돈이지만 원금을 갚아나갔습니다. 그러나, 여의치 않으니 곧 교회 출석을 중단했습니다. 차라리 돈을 꿔주지 않았으면 교회 출석을 계속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사역할 때 동료 목사님이 김해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자신이 너무 어려우니 200만원만 꿔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께 정중하게 말씀드리며 얼마 정도의 돈을 그냥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뒤에도 또 급하게 연락이 왔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를 하였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을 때 관계가 깨지기에 참 곤란합니다. 그럴 때는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성경에 “돈을 꾸어주지 말라! 보증도 서지 말라!”했으니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돈을 주면서 받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지, 그냥 준다! 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꾸어줄 때는 돈을 못받아도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을 한도에서만 꾸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빚을 내서 꿔주거나 돈을 꿔주고 내 생활비에 문제가 생기면 안됩니다. 꾸어준다는 것은 희생을 하며 꾸어주는 것인데, 그 희생이 가정의 생계를 위협하면 안 됩니다.
돈을 꾼 쪽은 꾼 돈을 갚는 데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돈을 꾸어 준 사람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고 있는데, 돈을 꿔간 사람은 돈을 펑펑 써대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웃의 사랑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전에 먼저 꾼 돈을 갚아야 합니다. 금방 갚을 수 없으면 수년이 걸리더라도 한 달에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조금씩이라도 갚아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돈을 찔끔찔끔 갚느니 큰돈으로 갚겠다고 하면 돈이 기다려주질 않고 다 날아가 버립니다.
가정교회는 가족이기에 더욱더 돈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족 그 이상의 가족을 꿈꾸는 예봄교회를 지키는 일입니다.
주여, 물질적인 어려움에 있는 가정들을 속히 회복시켜 주옵소서!